앞의 1,2편을 못 본 사람들은 여기서 읽고 오길바라
그럼 [쎈돌 이세돌] 3편을 시작한다!!
이세돌 九단
지난 2편
패도무문의 최강자였던 이창호를 처음으로 꺾고
세계대회 타이틀을 거머쥔 뒤
2002년,2003년 세계대회 후지쯔배 2연패 등
국내외 기전에서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며
이창호의 독주를 견제하기 시작했던 이세돌이었다
이제 이세돌의 다음 목표는
과거 조훈현,서봉수,유창혁,이창호가 차례로 차지했던
'응씨배'였지
2000년 제 4회 응씨배를 우승했던 이창호가
전성기를 달리고 있었고
제 3회 응씨배 우승자 유창혁 九단
제 4회 응씨배 우승자 이창호 九단
그런 이창호를 얼마전 LG배에서 꺾은 이세돌은
이제 최후의 등용문 응씨배만 우승하게 된다면
앞선 최강자들과 같은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바둑 팬들의 예상이 이어졌어
정말 단순히 기재로만 본다면
전광석화와 같은 수읽기, 승부의 흐름을 읽는 감각은
조훈현 이후 최고의 천재성을 보이고 있던 이세돌이었기에
주위의 관심은 이처럼 남달랐다
하지만 예상은 크게 빗나갔고
이세돌은
2004년 제 5회 응씨배 예선 1회전 탈락이라는 수모를 겪게 되는데
참고로 이 대회는 전기 대회 때 이창호에 막혀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던 중국의 창하오가
한국의 최철한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다
제 5회 잉창치배 세계 바둑 선수권 우승을 차지하는 창하오 九단
2004년은 이세돌에게 있어
치욕적인 한 해가 되고 말아
이세돌이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던
이 시기에 갑작스럽게 급제동이 걸리며
나서는 국내외 대회 마다 줄줄이 탈락했고
거의 넘어설 수 있을 것 처럼 보였던
이창호라는 벽의 높이를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간신히 중국의 왕시 五단을 꺾고
제 9회 삼성화재배 에서 우승하며
체면치레를 하긴 했지만
4년 마다 열리는 응씨배가 개최되며 다른 때 보다
유난히 많은 세계 대회가 열렸던 한 해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두고두고 아쉬운 한 해가 아닐 수 없어
제 9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우승을 거머쥔 이세돌 九단
이세돌에게는 지우고 싶은 한 해였던
이 2004년에
중국 갑조리그(프로바둑리그)에서
이세돌은 후에 자신과 숙명의 라이벌이 되는
중국의 구리 九단을 처음 만나게 된다
구리 九단(좌)과 이세돌 九단(우)
구리(古力) 九단
구리에 대해 잠시 설명하고 넘어가자면
83년생으로 이세돌과 동갑내기에
공교롭게도 프로 입단년도 또한 95년도로 이세돌과 같아
중국의 창하오와 뤄시허를 견제할 수 있는 신예기사로 촉망받았던
그는 2006년 LG배를 우승하며 첫 세계대회 타이틀을 획득한다
2016년 현재 커제 九단이 등장하기 전 까지 부동의 중국 1인자였어
구리 九단은 그 실력에 걸맞지 않게 '최강의 아마추어'라는
이상한 별명을 갖고 있는데
이건 그가 항상 어이없는 역전패를 자주 당해서 팬들이 붙여준 별명이야
(보통 아마추어들이 이런 실수를 많이 해)
초반 포석과 중반 전투 그리고 전체적인 판을 구성하는 감각은
라이벌인 이세돌을 능가한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발군의 실력을 지녔지만
후반 끝내기로 갈수록 약점을 드러내며
다 잡은 승리를 놓친 적이 많았어
'조훈현에게 녜웨이핑이 있었고
이창호에게 창하오가 있었다면
이세돌에게는 구리가 있었다.'
구리는 라이벌이었던 이세돌을 무척 좋아했어
항상 세계대회나 행사에서
이세돌과 만나면 먼저 나서서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고
대회 참석 차 한국에 오면 늘 이세돌부터 찾아간다고 해
2008년 구리 九단의 결혼식에 한국 기사로는 유일하게 초대받은 이세돌 九단
이런 둘의 일화 중에 하나는
어느날 구리가 이세돌과 18번째 대결 전날 전야제 기자회견장 에서
"나는 2월 3일 생이고 당신은 3월 2일 생이니
내가 형이고 당신이 동생이다. 나는 앞으로 5년, 10년
아니 더 많은 세월이 지난 후에도 우리가 더 가까운 사이로 지내길 바란다."며
이세돌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했어
함께 있던 취재진과 관객들이 하나같이 구리에게
"그럼 동생을 안아줘라!"고 말하자
구리는 자연스럽게 팔뚝을 벌려 이세돌을 껴안았지
2015년에는
이세돌과 '십번기十番棋'라는 역사적인 승부를 겨루게 되는데
이 부분은 뒤에 자세히 언급될 내용이야
이세돌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애증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중국의 최강자
그런 구리와의 첫 만남에서 이세돌은 완패를 당하고 말아
당시 이세돌은 잠시 침체기를 걷고 있었고
구리는 2003년 중국 천원전을 우승하며 한창 기세를 올리고 있었어
후에 이 둘은
수도 없이 많은 대회에서 마주치게 되는데
상대전적은 이세돌이 미세하게 앞서고 있어
한중일 프로기사 역대 통산 세계대회 우승 횟수
표에서 알 수 있듯이
통산 세계대회 우승 횟수는 구리보다 이세돌이 훨씬 앞서고 있어
역대 세계대회 최다 우승자는 이창호이고
이세돌이 이창호의 기록을 깰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잘 모르겠어
이제는 바둑기사로서 이세돌도 적지 않은 나이라서
앞으로 이창호가 세계 대회 우승트로피를 추가하지 못 한다고 가정하고
아마도 저 기록을 깨려면 마흔 전 까지는 깨야 할텐데
올해 이세돌이 서른넷이니까
아무튼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침체기를 뒤로하며 맞은
2005년
이세돌은 작년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이며
다시 한 번 우승 행진을 달리게 되는데
2005년
제2회 도요타덴소배 우승
제6회 맥심커피배 입신최강전 우승
제18회 후지쯔배 우승
제2회 중환배 준우승
2006년
제7회 맥심커피배 입신최강전 우승
제19회 후지쯔배 4위
제2회 한국물가정보배 우승
제25회 KBS 바둑왕전 우승
제11회 GS칼텍스배 우승
2007년
제3회 도요타덴소배 우승
2006년 바둑대상 최우수기사상 수상
제8회 맥심커피배 우승
KB국민은행 2007 한국바둑리그 주장
제19회 TV바둑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
제3회 한국물가정보배 우승
제35회 강원랜드배 명인전 우승
2008년
제36회 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 우승
제12회 삼성화재배 우승
제12회 LG배 세계기왕전 우승
제20회 TV바둑아시아 우승
2009년
제52회 국수전(國手戰) 우승
제13회 삼성화재배 우승
침체기를 완벽히 걷어내며
비로소 완전한 최강자의 면모를 갖추게 돼
2000년대 후반 이창호는 이제 하락세를 보이고 있었고
바야흐로 이세돌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었어
그렇게 전성기를 달리던 이세돌은
2009년
돌연 '한국바둑프로리그'에 불참을 선언
일체 한국에서 개최되는 기전에는 참가하지 않고
한국 바둑계를 떠나버린다
이 결정으로 온 바둑계는 충격에 빠졌어
한국 바둑을 이끌어 가고 있던 최강자가 돌연 바둑계를 떠나버린다니
말도 안되는 일이었지
그런데 한술 더 떠 이세돌은
한국에서는 활동하지 않겠다면서 중국리그에는 계속 참가하며
모든 이들의 공분을 샀어
또한 이세돌이 소속되어 있던 한국 프로팀은
졸지에 에이스를 잃어버리게 되었고
팬들은 이러한 무책임한 이세돌의 행동들에 거센 비난을 가했다
지켜보는 입장에서 말도 안되는 행동들이
계속해서 거듭되었다
2009년 휴직계 제출 관련 기자회견에 나선 이세돌 九단
이러한 일련의 논란에 대해 해명하고 정식으로 중국 활동을 포함한
바둑기사로서의 활동을 전면 중단하고자 이세돌은 기자회견을 갖게 돼
인사말 전문에서
"저를 아끼고 사랑해준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들여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대회진행에 물의를 일으키고 피해를 끼쳐 스폰서분들께도 정말 고개숙여 사과드립니다.
저는 그동안 루머 소문에 신경쓰고 싶지않아서 일일이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심정을 알리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라며 말문을 열었어
이세돌은 프로대회 주최사, 후원사, 바둑팬들을 하나하나 언급하며
거듭 죄송하다는 말을 세번 씩이나 하게 된다
또 한국에서는 활동하지 않으면서 중국에서는 활동했던 것에 대해
"휴직기간과 관계없이 계약이 있어, 계속 둘 수 밖에 없었다. 한국리그와 중국리그의 차별은 절대 아니다.
중국리그는 계속 참가하는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한국기원의) 다른 조치가 취해진다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하겠다.
중국리그의 경우 바둑두기 최적의 조건이다. 제한시간도 그렇고 주장전으로 펼쳐지는 시스템도 그렇고.
한국리그는 사실 상위 랭커들에게는 별로 매리트가 없는 기전.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곳에서 내가 최상의 가치가 있을 때 선수로 뛰고싶다."
"지금까지 성숙하지 못한 모습을 많이 보여드렸다.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고 많은 대화를 하겠다."
라며 거듭 팬들에게 사과를 해
이렇게 기자회견을 마치고 이세돌은 약 1년 반 가량
바둑계를 떠나게 되는데
사실 이렇게 된 모든 문제의 발단은 이세돌이 아닌
한국기원과 원로기사들에게 있었어
문제의 원인을 찾자면 한국의 프로제도가
탄생하는 곳 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해
故조남철 九단
한국에 프로기사 제도를 만든
조남철의 시대 부터
2대 국수인 김인으로 이어지기 까지
초기에는 대회 규모가 작아서 우승상금이 작았어
보통 김인은 술값으로 우승상금을 모두 탕진해버리곤 했다니까
이때부터 우승자들은 우승상금으로 후배기사들에게
술을 사주는 것이 일종의 관례처럼 굳어져 버렸다
그런데 문제는 김인의 시대를 이어
우승을 독식하게 된
조훈현과 서봉수가 술을 잘 마시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어
서봉수와 조훈현
서봉수는 그나마 어느정도 마셨지만
조훈현은 소주 한 잔만 마셔도 몸을 못 가누는 편이라
둘 다 술을 즐기지 않았고
이때부턴 후배들에게 우승 후 술을 사던 관례가 사라지게 돼
우승이란 우승은 둘이 다 해먹으면서
돈은 돈대로 안쓴다며
다른 기사들의 불만이 커지게 된다
그래서 한국기원 측은 이때부터
우승상금에서 일정 금액을 떼어가게 돼
(이 금액이 언론에 정확히 발표는 되지 않아서
정확한 액수는 알 수 없지만 꽤 많은 액수였던 것으로 보여)
명목은 한국기원 운영비용과 '기사회'라는 프로기사 복지회 사용기금이었어
기사회는 나이많은 기사들을 위해 생겨나게 되었는데
일정 나이를 넘기면 이곳에서 연금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 돈을 젊은 기사들의 우승상금에서 충당한다는게 문제였어
프로기사의 특성상 일정 나이를 넘으면
사실 대회에서 성적을 낸다는 것이 힘들어
보통 우승은 20~30대에 가장 많이 하게 되는데
자연히 어린 기사들은 나이든 기사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구조가 될 수 밖에 없었지
그런데 웃긴건
연금이라는 건 현역을 은퇴한 사람들이 받아야 하는 것인데
프로기사들은 은퇴라고 할 것이 없어
나이가 들어도 은퇴를 하지 않고 대회에 참가하지 않아도
심판이나 해설 등으로 부수입을 챙길 수 있거든
그런데 연금은 연금대로 받고
은퇴는 은퇴대로 안하고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 같지
옛날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던 조훈현은
젊은 시절 이렇게 우승상금을 반강탈 당하면서도
아무 말을 할 수 없었어
당연하게 생각했지
그리고 이창호도 스승이 가만히 있는데
자신이 나설 수는 없었기에 꼬박꼬박 돈을 줄 수 밖에 없었지
그리고 애초에 이창호는 집안이 부유했어
또 하나의 문제는 '기보저작권'에 있었어
기보라는 것은 대국의 수순을 정리한 것인데
대국이라는 것은 두 대국자가 만들어내는 것이니
당연히 그 저작권 또한 선수들 본인에게 있는 것이 맞는 일이었지
하지만 이 기보에 대한 저작권이
한국기원 측에 있다는 것이 문제였어
이세돌은 이 부분도 문제를 삼았다
이런 잘못된 구조를 근본부터 비판하고 나선 거야
하지만 이세돌 또한 자신이 몸담고 있던 이러한 한국기원의 부조리를
외적으로 공론화 시키고 싶지는 않았고
자신의 선에서 마무리 짓고자 했는데
이로써 예전 승단대회를 거부할 때 부터
한국기원에 미운털이 박혔던 이세돌과
한국기원과의 보이지 않는 완력싸움이 벌어지게 돼
이 과정에서 조훈현은 이세돌을 찾아가
이세돌의 행동에 대해 나무랐다고 해
'자신도 젊을 때 다 당했던 것인데 네가 뭔데 왈가왈부하냐'
대충 이런 논리였지
이 때문에 이세돌은 한국기원 측과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한국 대회에 대한 전면 불참 선언을 하게 된 것이었어
아무리 한국 최강자라고 해도 이세돌이 괴씸했던 한국기원 측은
모든 일을 이세돌의 탓으로 돌려 언플을 했고
이세돌은 엄청난 비난의 대상이 되어 공공의 적으로 낙인 찍히게 된다
결국 일은 한국기원과 원로기사들이 벌려놓고
욕이란 욕은 이세돌이 다 먹게 돼
이세돌은 늘 '불의에 대해선 할 말은 해야한다'라는 주의였기 때문에
자신이 문제가 아니라 후배들 에게도 이러한
말도 안되는 관례가 이어지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고 해
이 일이 마무리 된 후에도 한국기원의 언플로 흐지부지 되어 버려서
이세돌은 한 동안 팬들의 수많은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그래서 지금도 이세돌이 싸가지 없는 놈이라는 바둑팬들이 더러 있다
기자회견 중인 이세돌
보수적인 바둑계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 어떻게 응징을 당하게 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어
이에 이세돌은 한국 바둑계에 염증을 느끼고 형 이상훈을 통해
한국기원 측에 정식으로 휴식계를 제출했다
휴직 기간은 1년 6개월,
2010년 12월 31일 까지였어
하지만 이 일로 불안해진 것은 한국기원 측이었어
이세돌이 떠나자 각종 세계대회에서 중국 기사들이 타이틀을 휩쓸기 시작했거든
이세돌은 또 당장 자신들의 가장 큰 수입원 이기도 했고
어느정도 이 일에 대한 내막이 팬들에게 알려지며
한국기원 또한 비난을 피해갈 수 없었다
때문에 한국기원은 이세돌을 거듭 찾아가 휴직을 만류했고
결국 이세돌은 휴직 6개월 만인 2010년 1월 반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복귀 후 이세돌은 그간의 공백기가 무색할 만큼의 실력을 과시하며
소속팀인 '신안 천일염'팀의 첫 프로리그 우승을 이끌게 된다
그리고 이세돌은 시즌 MVP를 수상하게 된다
2010년 한국바둑프로리그 시즌 MVP를 수상하는 이세돌 九단
그리고 이어진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도 한국 대표팀으로 출전하게 되는데
태릉 선수촌에 입성한 이세돌과 이슬아
체력 훈련 중인 박정환과 이세돌
아시안 게임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바둑기사로서는 이례적으로 태릉 선수촌에 입성하여 체력 훈련도 받게 돼
이세돌 九단
이 대회에서 한국 대표팀은 단체전 부문 금메달을 차지하게 되고
이세돌은 원래 중학교 중퇴로 병역을 면제받은 상태였기에 관계 없지만
함께 출전했던 조한승 九단(당시 군 복무중)
박정환 九단 등은 여기서 병역 면제 혜택을 받게 된다
이창호도 이 대회에 출전해 금메달 획득에 보탬이 되었어
중국의 창하오 九단과 대국 중인 이창호 九단
그리고 이세돌은 이후
2010년
제6회 한국 물가정보배 우승
제1회 olleh KT배 우승
제2회 BC카드배 우승
2011년
제6회 원익배 십단전 우승
제2회 olleh KT배 우승(2연패)
제3회 BC카드배 우승(2연패)
제8회 춘란배 우승
제10회 농심 신라면배 우승
2012년
제17회 GS칼텍스배 우승
제3회 olleh KT배 우승(3연패)
제40회 하이원 리조트배 명인전 우승
제16회 삼성화재배 우승
2013년
2014년
제32회 KBS 바둑왕전 우승
제15회 맥심커피배 입신최강전 우승
제1회 렛츠런파크배 우승
제26회 TV바둑아시아 우승
무관에 머물렀던 2013년을 제외하고 꾸준한 우승가도를 보이며
세계 최정상의 자리를 지켜가게 된다
그리고 2014년 이세돌은 앞서 언급했던
라이벌 구리 九단과의 '십번기十番碁'의 혈전을 갖게 된다
이 십번기는 바둑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고 있어
2014년 십번기를 치르게 된 이세돌 九단과 구리 九단
오청원과 기타니 미노루의 십번기 모습
세기의 대결로 불리며 당시 엄청난 관심을 모았다
십번기는 예전 일본에서 두어지던 승부의 형식 중 하나로
'치수 고치기'가 그 목적이야
'치수'라는 것은 대국이 벌어지기 전
대국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상대가 나보다 기력이 높다면
어느정도 핸디캡을 주어야 하는지 정하는 것을 말하는데
치수에는
'호선(互先)'
나중에 두는 백에게 덤을 주고 선수의 효를 상쇄하여
흑과 백이 '호각'으로 겨루는 방식, 현재의 프로대국은 모두 호선으로 이루어 진다
'선상선(先相先)'
세 판을 기준으로 하수가 흑,백,흑의 순서로 쥐어 흑을 한 번 더 둘 수 있게 하는 경우
'정선(定先)'
나중에 두는 백에게 덤을 주지 않는 방식, 백에게 덤이 없으므로 상수가 백을 쥐고 하수가 흑을 쥐게 된다
이렇게 세가지가 있고
그 외에 한 점 부터 아홉 점 까지의 접바둑이 있어
접바둑은 하수가 흑을 잡고
기력의 차이에 따라 몇 점을 먼저 착수한 뒤
대국을 시작하는 것을 말해
물론 이 때에도 백에게 덤은 없다
십번기에 나서는 두 기사는
처음에 호선으로 시작했다가
패하면 선상선 정선 등으로 치수를 점차 내리게 돼
결국 여기서 패한 사람은 영원히 상대보다 '하수'라는 것을 인정해야 해
여기서 패배하는 기사는 죽을 때 까지 '~보다 하수'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하지
다음에 만날 때는 전에 십번기에서 승리했던 승자가
패자에게 한 수를 접어주게 되니까
프로기사로서 이만한 치욕은 없지
참고로 일본에는 이 승부에서 패배를 거듭해서 자신의 성까지 갈았던 기사가 있다
명예를 목숨보다 중요시 하던 일본인들이 만들어낸
일종의 바둑식 '캐삭빵'이라고 할 수 있어
그래서 현대에 와서는 이러한 부담이 큰 십번기는 두어지지 않게 돼
특히 프로기사를 직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렇지
그런데
알고보면 이렇게 무시무시한 승부가
이세돌과 구리 사이에 성사되게 돼
사실 이 승부가 논의되기 시작한 당시
주위에서는 너무 무리한 승부라며 우려가 나왔어
그도 그럴 것이 타이틀 매치도 아니고 그저 두 기사가 합의 하에
치르는 친선 대국인데 이겨봤자 본전이고
반대로 지는 쪽은 씻을 수 없는 불명예를 얻게 되니까
십번기의 시작 전 서로에게 인사를 나누는 이세돌과 구리
때문에 이세돌과 구리는 십번기를 시작하기 전에
팬들에게 이번 승부를 명예를 걸고 하는
본래의 십번기로 생각하지 말아주길 당부했어
대신 두 기사는 이번 승부의 상금을 '승자가 전부 가져가는 방식'으로 정했지
지는 쪽은 중국과 한국을 오고가는 승부에 필요한
비행기 값 외에는 일체 받지 못하고
승자가 우승상금 500만 위안(한화 8억 5천만원)을 독식하는거야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있던 라이벌인 이세돌과 구리는
이무렵 바둑 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이 필요하다는 고민을 똑같이 느끼고 있었거든
어느새 지루해져 버린 승부의 인생에
새로운 자극제가 필요했던 거야
이 십번기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흥미를 이끌어 내기도 좋은 승부였어
결국 이 십번기의 최종승자는
8국을 승리하며 종합전적 6대2로 십번기의 우승을 거머쥔 이세돌 九단
1,2국을 승리하고 3,4국을 패배한 이세돌이
나머지 대국을 내리 승리하며 먼저 6승을 기록했고
승부는 6대2로 이세돌이 승리를 차지하게 된다
이하는
십번기 승자 이세돌 인터뷰 내용
- 우승 소감은?
"세계대회는 자주 우승할 수 있지만, 이런 영광스런 10번기에서 승리를 했다는 건 기분이 다르다.
기쁘다는 말보다 더 좋은 표현이 있겠지만, 다른 단어가 생각이 안 난다."
- 패한 구리에게 한마디를 한다면?
"승패를 떠나서 나를 상대해 준 구리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구리가 없었다면 10번기 자체가 없었다. 가슴 깊이 감사한다."
- 10번기 여정을 돌아본다면?
"10번기가 시작할 때 두 사람 모두 컨디션이 안 좋은 상황이었다. 이제는 앞으로가 중요할 것 같다.
구리가 졌으니 타격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프지만 저력이 있는 기사이므로 그래도 빠른 시간 내에 올라설 수 있다고 본다.
구리나 나나 앞으로 더 잘해야 이번 10번기가 의미있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 오늘 대국이 어땠나. 후반이 복잡했다.
"굉장히 어려웠다. 후반에 흑이 좋아질 수도 있었다.
마지막은구리가 초읽기에 몰렸고
나는 10분 정도 여유가 있어서 큰 잘못 없이 마무리 할 수 있었다."
- 이번 10번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바둑은
"5국이다. 먼저 2승을 했을 때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이후 3,4국과 다른 기전에서 2패를 당하는 등 내리 4연패를 했다.
5국은 형세가 굉장히 나빴는데 운 좋게 역전할 수 있었고
그 바둑의 승리가 10번기 우승의 결정적인 판이 되었다."
- 지금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은 딸인가 아내인가?
"기왕이면 딸이라고 해야겠죠." (웃음)
- 최근에 자주 지는데 체력에 문제가 있나?
"작년 춘란배와 삼성화재배에서 준우승에 머문 것은 다른 복합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체력이나 나이, 이런 것들은 아직 큰 문제가 아니다. 세계대회와 10번기에서 10번기 쪽에 더 비중을 두었다.
둘 다 성적을 잘 낸다는 것은 내 능력을 벗어난 일이었다.
지금부터 잘해야 한다. "
- 휴식이 필요할텐데 다른 계획은 있나?
"10월에 바로 삼성화재배가 있다. 바로 10번기 이후의 첫 대회이기 때문이다.
사실 8국을 졌다면 모르겠지만 이겼으니 당연히 삼성화재배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이 대회를 마치고 좀 쉴 예정이다."
- 다시 10번기를 치를 수 있을까?
"스폰서가 생긴 후의 문제다. 당장은 힘들지 않을까 싶다. 일단 상대가 없다.
10번기라는 것은 단순히 일인자라고 해서 두어지는 게 아니다.
용호상박의 상대가 있고, 또 두 사람의 업적이 비슷해야 한다.
최하 세계대회 5개 이상은 우승한 상대여야 하지 않을까?"
- 10번기에 등장한 사람이 중국 일본 사람뿐이었는데 이제 70년 만에 10번기를 소화한 첫 한국인이다. 느낌은?
"굉장히 영광이다. 지금도 상황이 힘겨운데, 오청원시대는 부담이 엄청났을 텐데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번에 이겼으니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
- 마지막으로 바둑팬들에게
"바둑팬 여러분 그리고 니장건 회장님, 구리, 기자님들 모두 감사합니다.
한국바둑의 침체기에 10번기를 이긴 것은 의미가 큽니다.
중국바둑과의 대결에서 지는 모습도 많이 보여주었지만
이제부터는 중국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저도 최선을 다하겠고 동료기사들도 앞으로 많은 승전보를 전해드릴 것입니다.
바둑팬 여러분 사랑합니다."
여기까지가 3편이야
쓰다보니 중간중간 짚고 넘어야 할 부분들이 많아서...
내용이 너무 길어져서 부득이 이번 이세돌 편은
4편까지 써야할 것 같아...ㅠㅠ
나도 웬만하면 3편에서 끝내고 싶었는데 커제랑 알파고 부분만 해도
지금 써놓은 만큼은 더 써야 하는데 엄두가 안나네...
오늘 올린다고 말해놨는데 오늘내로 다 못쓸것같아서 일단 쓴 만큼 올려볼게
미안하당ㅠㅠ그래도 이거 오늘 거의 오후 내내 쓴거야
최선을 다해서 썼으니 부디 재밌게 읽어줬음 좋겠고
내 글에서 몰랐던 부분들도 얻어갈 수 있었음 좋겠다!
커제와 알파고에 대한 이야기는 4편에서 다 다루도록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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