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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현9단5

바둑 조훈현 [전투의 왕 그는 누구인가..?] -3 그럼 마지막 3편 시작한다!! 2편에서 1회 응씨배를 통렬한 역전 우승으로 장식하며국민적 영웅이 된 조훈현은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연승가도를 달리며 승승장구를 거듭한다바야흐로 세계최강이라 부를 만한 위치에 서게 된 것이지 그리고 한국에 돌아온 조훈현은 예체능계 인사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인'은관문화훈장'을 서훈받게 돼(조훈현 9단이 직접 수여받는 사진을 찾고싶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안나오네...;;) 2006년 노무현 정부 시절 금관문화훈장(1등급)을 추서받은 故조남철 9단 대신 故조남철 9단의 사진을 가져와 봤는데故조남철 9단은 앞서 말했다시피 한국바둑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조훈현이 받았던 은관문화훈장보다 한단계 높은 최고등급의'금관문화훈장'에 추서된다 그리고 여담으로 92년도에 열린 제 2회.. 2020. 8. 3.
바둑 조훈현 [전투의 왕 그는 누구인가..?] -2 그럼 2편 시작한다!! 1편 마지막 부분에서 한국으로 떠났던 조훈현은막상 한국에 돌아와보니 바로 입대를 할 수는 없는 처지였어영장은 나왔지만 대기기간이 1년이상 돼서72년도에는 바로 입대를 하지 못해 워낙 어려서 일본으로 떠나서인지 어느새 한국어도 서툴어져 버렸고오히려 조훈현에게 한국은 낯선 환경이 되어버렸어일본기원에서 5단까지 승단하고 돌아온 것을인정받아 한국기원에서도 5단으로 인정해주지 그당시 70년대 한국에서는 이제 막 바둑이 널리 보급되어 프로바둑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시절이었기에조훈현은 국내기전에도 참가하게 되는데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못하고 번번히 탈락하는 수모를 당해일본에서는 승승장구였지만 정작 한국에 와서는 유학의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자조훈현을 예의주시하던 한국바둑계에서는 싸늘한 시선을 보.. 2020. 8. 3.
바둑의 神 "이창호 9단" [한시대를 지배했던 전설의 기사] -3 마지막 3편 시작한다! 이창호 九단 지난 2편에서 2002년 오직 스승 조훈현만이 다다를 수 있었던 프로 통산 1000승과 타이틀 획득 100회라는 철의 금자탑을 세우며 조훈현 시대의 패막과 이창호 시대의 개막을 알렸던 이창호였다 2편에 빠트린 내용이 있었는데 짚고 넘어가자면 2000년도 제 4회 응씨배에서 중국의 창하오를 3-1로 꺾고 당당히 우승을 거머쥐게 돼 응씨배 우승은 세계 최강을 자처하는 이라면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코스인데 한중일 국내 기전, 세계 기전을 통틀어 최대 규모의 상금으로 치뤄지는 대회이기도 하고 4년 마다 한 번 씩 열리기 때문에 '바둑 올림픽'이라고 불리며 세계 바둑팬들의 관심이 가장 집중되는 대회야 여담으로 아쉽게도 이세돌은 아직 이 대회의 타이틀이 없어 다른 세계 대회는 모.. 2020. 7. 31.
바둑의 神 "이창호 9단" [ 한시대를 지배했던 전설의 기사 ] -2 1편 포스팅처럼. 이야기 풀이는 반말로 할게요~!! 자 그럼 바로 2편 시작한다! 이창호 九단 지난 1편에서 당대 최고의 실력자였던 조훈현은 이창호를 내제자로 받아들여 함께 서울로 올라와 그때 당시 화곡동에 거주하던 조훈현은 이창호를 내제자로 들이게 되자 연희동의 넓은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하게 돼 (참고로 왜 제자를 내제자라고 부르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어서 설명해주자면 바둑을 배우기 위해 스승의 집에 머물며 수학하는 제자를 바둑계에서는 내內제자라고 불러) 당시 조훈현은 노부모를 모시며 살고 있었는데 이창호는 2층의 노부모가 쓰는 방에서 함께 지내게 돼 이창호는 지금의 승부사다운 모습과는 다르게 어린시절부터 겁이 많았다고 해 특히 잘 때는 혼자서 잘 수 없어서 전주에 지낼 때도 늘 부모님과 함께 자거나 형.. 2020.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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