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편이라 분량이 좀 많아
긴 글이지만 재밌게 읽어줬음 좋겠다
자 그럼 [쎈돌 이세돌]편 그 마지막 4편 시작한다!!
이세돌 九단
지난 3편에서 라이벌 구리와의 십번기에서 승리하며
침체된 한국 바둑을 되살리기 위해
재도약의 의지를 불태운 이세돌이었어
보통 바둑기사들은 서른을 넘기면 하락세를 걷게 되는데
2014년 이세돌이 서른 둘이었어
20대 때 만큼 압도적인 우승 횟수를 보여주진 못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2014년까지 꾸준히 국내 기전과 세계기전에서
모두 우승을 거두며 건재한 모습을 보여주었지
이 당시 한국 바둑계는 이세돌을 포함한
아래의 3강이 주도하는 모습이었어
박정환 九단
박정환은 93년 생으로
올해 4월까지 29개월 연속 한국 프로기사 랭킹 1위를 지키고 있는
현재 한국 바둑계 1인자야
하지만 통산 세계 대회 우승이 2회 뿐이어서
'국내용'이라는 오명을 씻지 못하고 있다
분명 기재는 뛰어난데 뚜렷한 개성이 없어 아직 팬들로 부터 별명이 없어
그나마 얻은 별명이 '국내용'...
사실 별명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프로기사에게 별명은 굉장히 중요해
별명이 없다는 건 그만큼 팬들에게 관심이 없다는 뜻이니까
기사가 가진 별명의 숫자로 그 기사를 판단하기도 해
여러 가지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기사 중에 하나야
김지석 九단
동안으로 유명한 김지석은
89년생으로 의외로 나이가 꽤 돼
현재 박정환과 함께 한국 바둑계의 미래로 불리고 있는 기사야
예전 이세돌이 인터뷰에서
'자신의 뒤를 이어 최강이 될 만한 후배 기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김지석을 꼽은 적이 있다
공격적인 기풍으로 전성기 시절 이세돌과 가장 닮아있어
24세라는 이른 나이에 서울대학교 대학원 출신 일반인과 결혼하였고
아버지가 대학교수, 어머니는 약사라는 점에서 '엄친아'라는 별명을 얻었다
박영훈 九단
이창호 이후 어린 시절 부터 형세판단 면에서 탁월한 기재를 보여
이창호의 '신산神算'이라는 별명을 이은 '소신산小神算'으로 유명했어
전투능력이나 승부감각 등은 위 두명에 비해 떨어지지만
셋 중 수읽기와 끝내기 능력은 박영훈이 가히 압도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참고로 박영훈은 이 분과 동갑내기 친구다
최철한 九단
이 외에도 최철한,목진석,강동윤 등을 포함해
확실한 최강자가 없는 춘추전국시대가 이어져 오고 있었지
한 동안 세계 최강의 자리를 지켜온 이세돌의 위세가 약해졌으나
조훈현-이창호-이세돌의 계보를 잇는
뚜렷한 최강자가 나오지는 않고 있다
그나마 박정환이 랭킹 1위를 오랫동안 유지하며
이세돌의 후계자로 가장 유력해 보였는데
박정환 마저도 세계대회에서는 번번이 탈락하며
프로기사의 커리어에 있어 가장 중요한 세계무대에서 유독 약한 모습을 보여
이세돌의 진정한 후계자가 되지는 못하고 있다
8,90년대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바둑이
2000년대 부터 차츰 인기를 잃어갔고
2010년대를 지나서는 그 인기가 바닥을 치게 되는데
(현재는 이세돌 덕분에 약간 상승세에 있어)
이세돌은 이러한 한국 바둑계를
살리기 위해서는 프로 기사들이 세계무대에서 예전과 같은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수 밖에 없다며 후배 기사들을 독려했어
사실 구리와의 십번기도 뒤돌아선 바둑팬들의 관심을
다시 되돌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어
그렇게 이세돌은 십번기 이후 맞이한
첫 세계 대회인 제 19회 삼성화재배에 출전하게 된다
2014년 제 19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8강 진출자
8강에서 탈락하게 된 이세돌 九단
아쉽게도 이세돌은 이 대회에서
8강에서 만난 중국의 강호 스웨 九단에게 패해 탈락하게 돼
스웨는 이후 4강에서 한국의 김지석 九단을 만나 패하게 되고
김지석은 결승전에서 중국의 탕웨이싱을 만난다
삼성화재배 결승전에 진출한 탕웨이싱
2014 제 19회 삼성화재배 우승을 차지한 김지석 九단
웃는 모습 귀여우시네;;
이 대회는 김지석이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이후 2015년
이세돌은 제 20회 삼성화재배에서
다시 한 번 이 대회 우승을 노리게 되는데
바로 이 대회 4강에서 중국의 커제 九단과 처음으로 맞부딪히게 돼
2015년 제 20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4강 진출자
얼마전 끝난 이세돌과 알파고 대결을 전후로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중국 기사가 바로 커제일거야
아마 바둑을 알지못하는 사람들도 커제만큼은 알고 있을텐데
커제(柯洁) 九단
커제는 2008년 입단한 중국의 신예 기사야
사실 입단은 2008년에 했지만
2013년 까지 별다른 성적을 보여주지 못했어
2013년에도 삼성화재배 16강 진출 정도의 성적이 고작이었지
그리고 이듬해 2014년 중국 국내기전인 아함동산배에서 첫 우승을 차지하는데
이마저도 중국 기전중에서 마이너로 분류되는 소규모 대회였어
이때까지 중국에서는 그저 그런 기사로 평가받고 있었는데
2015년 세계대회 제 2회 바이링배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첫 세계대회 우승을 거뒀어
단계적으로 실력을 키우면서 올라온 것이 아니라
갑자기 확 뜬 케이스야
그래서 작년까지도 커제는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했는데
이제는 명실상부 세계최강으로 인정받고 있지
어쨌든 20회 삼성화재배에서 이세돌과의 악연이 시작된다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여기서는 이세돌의 압승이 예상됐어
커제는 입단 후 이렇다 할 성적을 보여주지 못했고
중국 내에서 평범한 기사로 평가받던 커제가
갑작스레 메이저 세계대회인
삼성화재배 4강까지 진출한 상황이었으니까
2015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준결승
이세돌 대 커제
하지만 결과는 이세돌의 처참한 2대0 패배
이런 충격적인 결과에 중국 취재진은 물론 한국 취재진 모두 놀랄 수 밖에 없었어
이때 한국에서는 이세돌이 소위 꿀대진을 만났다며 낙관하고 있었는데
이세돌이 커제에게 힘 한 번 제대로 못 써보고 2대0으로 발려버렸다
이때 대국을 지켜보던 검토실의 어린 기사들은
"오늘 백(이세돌)처럼만 두면 나도 이길 수 있겠다"
라며 이세돌의 형편없는 경기력을 문제삼았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상대는 당시 족보도 없이
준결승 까지 올라온 커제였으니까
준결승전 해설을 맡았던 유창혁 九단도 이세돌의 경기력을 지적했다
경기 승리 후 인터뷰에서 커제는
“어릴 때 이세돌 9단의 기보를 보며 공부를 했었다.
이번이 첫 대결인데 역시 그의 번뜩이는 날카로움이 있었다.
다만 이세돌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수월하게 승리할 수 있었다.
결승 상대는 누가 올라와도 어렵겠지만 스웨 9단과 두어보고 싶다.
그동안 전적도 비슷해서 좋은 승부가 될 것 같다. 현재 삼성화재배, LG배, 몽백합배를 남겨두고 있는데
몽백합배는 특히 중국 주최의 대회인데다 4강에 중국 선수로는 나 혼자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더 욕심이 난다. 솔직히 3개 중에 하나만 우승했으면 좋겠다”라며
이세돌과의 첫 대결 소감을 밝혔어
이후 커제는 자신이 대결 상대로 원하던 스웨 九단과 결승전에서 만나
승리를 거두고 내친김에 우승까지 차지하게 된다
2015년 제 20회 삼성화재배 우승을 차지한 커제
이에 중국과 한국의 바둑팬들은 모두 커제를 주목하기 시작해
당시 중국 바둑계도 우리나라와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았는데
압도적인 최강자 없이
스웨,탕웨이싱,판팅위,미위팅 등 다수의 기사들이
우승 경쟁을 펼치고 있었지
이때 부터는 커제도 그들과 함께 우승경쟁을 펼치는 구도가 되었다
하지만 이세돌은 이때 까지도 커제를 그렇게 의식하지 않았어
물론 삼성화재배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긴 했지만
중국은 예전부터 반짝 활약하다 사라지는 기사들이 많았거든
꾸준히 압도적 강세를 이어왔던 적이 한번도 없었어
물론 그것이 당시에는 한국의 최강자들이
너무 강한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그래서 이세돌은 커제도 반짝 하다 말거라고 생각했을거야
이때까지는 말이지
얼마 지나지 않아 커제와 이세돌은 다시 한 번 맞붙게 되는데
제 2회 몽백합배 세계바둑오픈 결승전이었어
몽백합배는 2014년 중국에서 처음 개최된 신생 기전이야
이곳에서 이세돌은 커제에게 당한 수모를 갚아줄 좋은 기회를 얻게 되지
몽백합배 결승전 직전까지의 이세돌과 커제
아직도 커리어에서는 커제가 이세돌을 따라잡기엔 멀었지
2016년 월간바둑 2월호 표지를 장식한 이세돌과 커제
제 2회 몽백합배 준결승 박영훈 대 커제
커제는 여기서 한국의 강호 박영훈 九단을 꺾고 결승에 진출하게 돼
이 당시까지 커제는 중국 갑조리그에서 부터 이어진
백번으로 35연승을 이어가고 있었어
그리고 그 기세로 중국 자국랭킹 1위를 달리고 있었지
그래서 커제는 '백번불패'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지
흑번에서도 커제는 강한 모습을 보였지만
백을 잡은 커제는 좀처럼 지는 법이 없었어
때문에 중국에서는
백의 덤이 너무 많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게 돼
중국은 한국과 다르게 백에게 덤으로 7집반을 주고 있어
이에 반해 한국과 일본은 덤을 6집반이다
(덤은 흑이 먼저 두어서 얻는 이득을 백에게 집을 줌으로써 상쇄시키는 것)
이세돌을 도발하는 정성룡
그런데 결승전이 열리기 전 전야제에서
커제는 결승전에 대한 자신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세돌은 확실히 스웨보다 약하다.
그가 우승할 확률은 5%에 불과하다. 결국 내가 95%의 확률로 우승을 거둘 것."
이라며 이세돌을 도발하게 된다
이건 마치 어린 시절 이세돌을 보는 듯한 파격적인 도발이었어
과거 이세돌은
"이세돌 본인이 생각하는 세계 최강의 기사"
를 묻는 중국 기자를 상대로
"조훈현,이창호,요다 9단 정도가 세계최강이라 불릴 만한 기사들이다."
라고 답변하며 중국 기사를 언급하지 않은 적이 있거든
결국 그 중국 기자가 당시 중국 최정상급 기사였던
"마샤오춘 9단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재차 질문하자
"아 마샤오춘은 빼주세요"
라며 중국언론을 도발했던 적이 있어
이에 화가난 중국기자는
"그럼 일본에서 활약한 오청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묻자
"그의 기보를 공부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라며
도발을 멈추지 않았지
한국팬의 입장에서는 재밌는 일화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도발을 당한 중국인들의 입장에서는 화가 날 수 밖에 없는 일이었어
이 때문에 이세돌은 지금도 중국팬들에게 감정이 좋질 않아
그나마 이세돌이 과거에 쓰촨성 지진에
우승상금 전액을 기부했던 일로 조금 감정이 누그러지긴 했지만
아마도 커제는 상대가 과거에 중국을 도발했던 이세돌이었기에
이런 도발을 서슴치 않을 수 있었을 거야
만약 상대가 중국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며 신처럼 추앙받았던
이창호였다면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싶어
그렇게 화제를 낳으며 시작된 몽백합배 결승전 제 1국
제 2회 몽백합배 결승전 제 1국
공교롭게도 이 대국에서 커제는 백을 잡게 되었고
이세돌은 흑번으로 시작하게 되었어
백번에서 35연승을 달리며 무적의 모습을 보이고 있던 커제를 상대로는
출발이 좋지 못했지
제 2회 몽백합배 세계바둑오픈 제 1국(장면도 1~143)
이세돌은 이 대국에서 처음부터 엄청난 공격을 퍼부으며
커제를 흔드는 작전을 펼치게 된다
커제는 흑을 쥐었을 때와 백을 쥐었을 때
기풍의 차이를 보여왔어
흑을 쥐었을 때는 초반부터 상대를 공격해서 실리로 앞서나가는 전략을 주로 썼고
백번일 때는 처음부터 단단하게 수비적으로 나가서 덤 7집반의 이점을 살리는 전략을 취했어
이세돌은 이런 커제의 전략을 알고 있었고
커제에게 초반부터 쉽게 집을 내주면 안된다고 판단을 한거지
이세돌에게 공격을 당하며 집으로 많이 손해를 본 커제는
좌변의 흑대마를 잡아야만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커제도 물러서지 않고 흑대마를 집요하게 공격하며 접전을 펼치게 돼
하지만 흑의 143수로 인해 백은 역으로 중아에 큰 집을 내주게 되었고
이 수가 결국 승착(승리를 결정짓는 수)이 되어
143수 만에 커제는 돌을 거두고 만다
사실 이세돌은 젊은 시절 공격 일변도의 기풍을 보였다면
서른을 넘기면서 부터는 그 기풍이 바뀌어서
수비적으로 실리를 취하는 기풍으로 바뀌게 되었거든
물론 이때까지도 상황에 따라 전투를 안한 것은 아니지만
전투보다는 상대의 공격을 역으로 받아치는
타개 위주의 기풍을 보이게 돼
보통 바둑 기사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기풍이 바뀌는 일이 흔하게 있어
전투와 실질적인 이득(집)을 선호했던 기사가 나중에는
타개와 세력을 선호하게 되고
속기를 중시하던 기사가 장고를 하게 되고
장고를 하던 기사는 속기로 두게 되고
이상하게 보이지만 이런 일이 흔하게 일어난다
그런데 이세돌은 대국 전 도발에 대한 영향이었는지
상대에 대한 맞춤 전략이었는지
과거 '리틀 전신'으로 불리던 그 때의 이세돌 처럼
시종일관 커제를 공격해 커제에게 항복을 받아내며
커제의 백번 35연승 또한 여기서 멈추게 된다
이세돌이 먼저 승리를 거두며 기분좋은 출발을 보였어
그리고 다음날 이어진 제 2국
제 2회 몽백합배 세계바둑오픈 제 2국
제 2회 몽백합배 세계바둑오픈 제 2국(장면도 1~143)
1국에서 흑으로 기분좋은 승리를 거두었던 이세돌은
흑번에서는 백번보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던 커제였기에
이 날도 이세돌의 승리가 예상됐어
그리고 실제로 이세돌이 대국 중반부터 중앙의 흑집을 부수며
승기를 잡아 지기 힘든
유리한 상황을 연출해내며 2연승을 거두는 듯 싶었지만
흑의 131수로 좌상귀의 백이 모두 잡히게 되어
161수 만에 이세돌은 어이없는 패배를 당하게 된다
이세돌은 대국 후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내가 겪은 세계대회 결승전에서 가장 큰 역전패를 당했다."
라며 소감을 밝혔고
당시 해설을 맡았던 박정상 九단은
"이기는 길이 무수히도 많았는데 도대체 왜 졌는지 모르겠다"라며
아쉬움을 토로했을 정도였어
그렇게 승부는 1대1로 팽팽해졌어
이틀 후 속개된
결승전 제 3국은
제 2회 몽백합배 세계바둑오픈 제 3국
이 바둑은 이세돌이 중앙의 흑대마를 살릴 수 있다면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 처럼 보였지만
그런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커제는 집요하게
이세돌의 흑대마를 공격했고 그 과정에서
이세돌이 집 손해를 거듭하며
결국 돌을 거두고 말았어
이후 이어진 제 4국
이후 이어진 4국에서 이세돌은 다른 때보다 더 비장해 보였어
2대1로 승부가 벼랑 끝 까지 몰렸기 때문도 있지만
2국의 대역전패 후 이어진 3국의 아쉬운 패배
아마 전 날의 패배를 기점으로
이세돌은 커제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던 것 같아
'그저 겁없는 패기의 신예기사'에서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호적수'로서 생각을 바꾼거지
사실 나는 이세돌이
그동안 커제를 얕보고 있었다고 생각해
말도 안되는 역전패를 당한 것도 그렇고
앞서 커제가 삼성화재배에서 이세돌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던 것은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실 이후의 행보를 보아도 결과론적으로 커제는 엄청난 실력을 지니고 있었지
바둑격언 중 가장 유명한 '경적필패輕敵必敗'라는 말이 있어
'적을 가벼이 여기면 반드시 패한다'는 뜻이지
이세돌은 다시 한 번 이 격언을 세기고 4국에 임했으리라 생각해
결국 4국의 결과는 162수만의 백 이세돌의 불계승이었다
승부는 결국 제 5국 결승국까지 가서야 가려지게 되었어
제 2회 몽백합배 세계바둑오픈 제 4국
제 2회 몽백합배 세계바둑오픈 제 5국(결승국)
제 2회 몽백합배 세계바둑오픈 제 5국(장면도 1~281)
시작된 승부는 초반부터 치열했어
양 쪽 모두 더이상 물러설 수 없었기에 최강수로 나올 수 밖에 없었지
전투는 거듭되었고
집의 균형은 계속해서 유지됐어
승부를 알 수 없었던 것이지
하지만 중반 이후 상중앙 백의 넉점(76,78,80,116수)이
흑에게 끊어 잡히게 되며 흑의 집이 크게 불어났고
우열을 가릴 수 없던 승부에서 백이 상당히 불리해져 버렸어
만약 이것이 결승국이 아니었다면 이 때 백이 돌을 던졌어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로 불리했지
하지만 여기서 지면 그대로 끝이나는 상황이었기에
이세돌은 끝까지 추격했고 끝내기에서 상대의 실수를 유도해
결과를 뒤집는 수 밖에는 없었어
그 와중에 흑을 쥔 커제가 끝내기에서 245수째 작은 실수를 하며
오히려 백이 반집승을 거둘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어
승부는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알 수 없는 상황까지 이어졌지
이 부분에서 잠시 설명하고 넘어가야할 부분이 있는데
한국과 중국의 계가 방식이야
이 몽백합배는 중국에서 개최되기 때문에
중국식 바둑 룰로 진행되고 있었는데
중국식은 한국,일본식과 계가(집을 세는 것) 방식에 약간 차이가 있어
한국과 일본식의 계가
우선 위 사진은 정확히 따져서 완벽한 계가의 모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설명하자면
한국식으로 계가를 할 때는
먼저 내가 따낸 상대의 돌(사진에서 빨간색으로 체크해놓은 돌)을 상대의 집에
메우고 각자 만들어진
집(내 돌로 둘러싸인 안의 빈공간의 점 개수)을 세서
서로의 총합에 백의 경우에는 덤까지 합산해서
총 집의 수를 비교하게 돼
반면 중국식은 내가 따낸 상대의 돌은 상관치 않고
반상 위에 있는 자신의 돌 수를 세게 돼
뭐 어차피 결과적으로는 마찬가지야
상대의 죽은 돌로 집을 메우는 것이나
그렇게 하지 않고 반상의 각자의 돌을 세는 것이나 결과적으로는 같아
(중국식에서는 돌이 먹히게 될 경우 자신의 돌이 줄어드는 것이니까)
하지만 이 부분의 차이 때문에 마지막에 커제는
반패(서로 따내야 하는 집,끝내기 중 가장 이득이 작은 곳)를 잇지 않고
공배를 메워 자신의 돌을 늘리며 이득을 보게 된다
쉽게 말해서 끝내기에서
한국식으로는 하면 손해가 되는 행동으로
중국식에서는 오히려 이득을 볼 수 있어
이걸로 결국 이세돌이 딱 반집 패배를 하고 말아
결승국 후 이세돌과 커제의 모습
이세돌의 패배 후 한국 언론에서는
'한국식 룰로 했으면 마지막에 이세돌이 이겼을 것이다'라며
자위를 했지만
이세돌은 수년간 중국리그에서 활동해 온
한국기사 중 누구보다 중국식 바둑을 잘 두는 기사야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서 중국식과 한국식 룰을
오해해서 졌다는 것은 변명 조차 될 수가 없어
게다가 중국식 룰에서는 덤이 7집반인 백이 확실히 유리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던 상태에서 이세돌이 백을 쥐고 패했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이세돌의 '완패'였어
물론 마지막에 역전승을 거둘 수도 있었기에
아쉬움은 많이 남지만
커제가 실력으로 이세돌을 완벽히 꺾었다고 밖엔 볼 수가 없었다
몽백합배 우승 직후 인터뷰에 응하는 커제
그런데 대국 후 오히려 커제는
"역시 이세돌은 최강의 기사다. 그의 바둑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라며
이세돌을 인정해주고 오히려 자신을 높이는 소감을 밝혀
그리고 논란이 되었던 대국 전의 '5%' 발언에 대해서는
"그 당시 이세돌이라는 강자에게 기세에서 밀릴 수 없었다.
기세를 위해 과장을 했던 것."이라며
자신의 도발에 대한 해명도 덧붙였다
만약 커제가 승리후에도 이세돌이 별 볼일 없다는 식으로 말을 했다면
오히려 커제를 인정할 수 없었을 거야
그런데 이런 우승 소감을 듣고난 후 에는
모두가 커제를 최강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몽백합배의 우승으로
커제는 한 순간에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지
이세돌은 패배 후 인터뷰에서
"커제는 강하다.확실히 이번에는 나의 완패다.
그러나 다음번엔 꺾을 수 있을 것 같다."며
반격 의지를 보였어
이때까지
이세돌은 계속되는 대회 일정으로 피로가 누적된 상태였어
그리고 다들 잘 알다시피 몽백합배 이후
올해 3월에 구글의 알파고와 대국을
예정지은 상태였기에
이세돌은 당초 타 대회 참가를 하지 않고 잠시 휴식기를 갖도록 되어 있었지
하지만 계획은 금방 어긋나 버렸어
휴식을 계획하고 있던 이세돌은
후원사인 농심과 한국기원의 지속적인 간곡한 부탁으로
대표 선발전에 참가하지도 않았던
제 17회 농심 신라면배 한국 대표팀에 와일드카드로 뒤늦게 승선하게 돼
제 17회 농심 신라면배 개막식
당시 한국 대표팀의 멤버로는
백찬희 初단, 민상연 四단, 최철한 九단, 박정환 九단
그리고 이세돌 九단이 있었어
왼쪽 부터 백찬희, 민상연, 최철한, 박정환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히는 백찬희 初단
당찬 포부를 밝히며 개막전에 나선 한국의 선봉 백찬희 初단은
일본의 선봉 이치리키 료 七단을 만나게 된다
첫 세계 무대에 부담감이 컸던 탓인지 백찬희는 대국 내내 끌려다니다 패하고 말았어
백찬희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일본의 이치리키 료는 연달아 중국의 판윈뤼를 꺾고
한국의 2장 민상연과의 대결에 나선다
당초 대회에 나서는 마음가짐에 대해
"팀의 허리를 맡고 있는 만큼 절대 지지 않겠다는 각오로 뱃심으로 밀고나가겠다."라는
당찬 각오를 밝힌 민상연이었기에
한국 팬들은 먼저 한국에 패배를 안겨준 이치리키 료를 반드시 잡아주길 기대하고 있었어
그리고 결과는
...
연이은 한국 팀의 2연패
순식간에 믿었던 신예기사 둘이 연달아 패하며 한국은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후 일본의 이치리키 료는 중국의 우광야를 맞아 패배하였고
한국의 3장으로 나서게 된 최철한으로서는 큰 부담감을 안은 채 승부에 임하게 되었지
한국 대표팀의 첫 승을 거두는 최철한
이어지는 한국의 최철한과 중국의 우광야의 대국은
최철한의 121수 만의 흑 불계승으로 최철한의 압승으로 끝이 났어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있던 한국 팀에 기분좋은 2연승을 선물하는 최철한
기세를 높인 최철한은 뒤이어 일본의 이다 아쓰시를 상대로도 승리를 거둔다
크흐ㅋㅋㅋㅋㅋㅋㅋㅋㅋ
5G구요 G리구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지만 2연승을 거둔 최철한은 이어진 중국의 구리와의 대결에서 아쉽게 패하고 만다
이제 한국 대표팀은 박정환과 이세돌만이 남은 상황
물론 최철한이 제 몫을 해주었고 한국에겐 아직 최강의 카드 둘이 남긴 했지만
다소 불리한 것이 사실이었어
반드시 박정환이 최소 두명이상은 잡아주거나
될 수 있는 한 많은 승을 거두어 주어야만 했지
형...저 한국랭킹 1위예요...
계가까지 가는 접전이었지만 결국 패하고 마는 박정환
293수 까지 가는 대 혈투끝에 두집반 차이로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아쉬운 패배를 당하고 말아
이세돌 다음으로 믿고 있던 박정환이
최철한을 꺾었던 구리에게
어이없이 무너져 버리고 한국은 위기를 맞게 되었지
이세돌과의 대국을 바라고 있던 구리는 3연승 후
일본의 2인자 무라카와 다이스케 八단을 만나 무너지게 되어
아쉽게도 구리와 이세돌의 대국은 성사되지 못했어
국내 1인자였던 박정환의 충격적인 패배 이후
일본에는 현재 일본의 2인자인 무라카와 八단과
부동의 1인자 이야마 유타 九단이 남아있었고
중국에는 롄샤오 七단과 이세돌의 천적 커제 九단이 남아
이세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 대표팀의 우승을 위해서는
이세돌이 연달아 네명을 모두 꺾어야 하는 상황
이는 곧 과거 이창호의 6회 농심 신라면배
'상하이 대첩'과 같은 상황이었다
약 10년만에 재현되는 역사적인 상황에
바둑계는 한껏 달아오르게 되었어
과연 이세돌이 '제 2의 상하이 대첩'을 이루어 낼 수 있을지
온 바둑팬들의 기대가 모아졌지
대국 전 인터뷰 중인 이세돌
보통의 기사라면 그 중압감에 짓눌려 무너져 버렸을테지만
이세돌은 달랐어
그는 천성적으로 팬들의 관심을 즐기며
위험한 승부를 오히려 반기는 사람이었으니까
아마도 선배 이창호만이 이룰 수 있었던 기적같은 역전우승을
자신도 이뤄낼 수 있다는 그 상황에 감사했을 이세돌이었다
이 당시 이세돌은 알파고와의 결전을 2주도 남겨놓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알파고와의 대결은 잊고 오직 농심배에 사력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밝혀
일본의 무라카와 다이스케 八단과 중국의 롄샤오 七단을 연이어 꺾은
이세돌 九단
자신보다 약체로 평가받던 일본과 중국의 기사들을 연이어 꺾어낸
이세돌은 당초 피로누적으로 휴식을 계획하고 있던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았어
두 대국 모두 압도적인 기량차이를 보여주며 힘이 넘치는 바둑으로 압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일본의 주장
이야마 유타 九단과의 대국은
제아무리 이세돌이라 해도 쉽게 승리를 예측 할 수 없었어
현재 현재 일본바둑 부동의 1인자 이야마 유타 九단
이야마 유타는 현재 일본 내의 모든 기전을 독식하고 전관왕을 달성하며
홀로 외로운 독주를 펼치고 있는 일본 내에서는 유일무이한 1인자
아무리 일본 바둑이 한국과 중국에 밀렸다고 해도
이야마 유타 만큼은 그 무게감이 남달랐어
그렇게 이전의 두 대국과는 다르게 시작된 이야마 유타와의 대결
박빙의 승부가 예상됐던 승부에서 손쉬운 승리를 거둔 이세돌
하지만 결과는 이세돌의 압승이었어
물론 이야마 유타도 강했지만 이세돌은 차원이 달랐다
반신반의 하며 '제 2의 상하이 대첩'을 기대하던 한국의 바둑팬들은
이세돌이 정말로 해낼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사로잡히게 되었어
이제 중국의 주장 커제만 넘으면 한국이 역전우승을 거두고
이세돌은 이창호에 이어 다시 한 번 세계무대에 역사를 쓰게 되는 순간이었으니까
그리고 이세돌 개인에게도 다음 대결은 분명히 중요했어
이전 대결에서 커제에게 번번이 무릎 꿇으며
승부사로서 치욕을 당했던 이세돌이었기에
커제에게 복수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
여러가지 의미로 이세돌은 놓칠 수 없는 승부였다
하지만 질 수 없는 것은 커제도 마찬가지였어
농심배는 개인전이 아닌 바둑기전 유일의 국가 대항 단체전
첫 출전에서 중국의 주장으로서 자신의 손으로 자국의 우승을 결정짓고 싶었을 테니까
더군다나 중요한 대회마다 마주치던
이세돌과의 승부였으니 그 의미는 더 했지
제 17회 농심 신라면배 최종 결승국
이세돌 대 커제
서로 반드시 이겨야 하는 승부가 그렇게 시작되었어
사실 이전의 승부때도 늘 그랬지만
대국의 초반은 커제가 앞서나가게 되었어
사실 커제의 가장 강점은 초반 포석에 있어
반대로 이세돌은 초반 포석에 약하고 중반 전투에 가장 강한 모습을 보이지
초반 포석에서 많은 손해를 본 이세돌은
중반 전투에서 만회를 꾀했어
하지만 커제는 쉽게 흔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더 빠르게 두어가며
이세돌을 시간으로 압박했어
결국 이세돌은 바둑을 난전으로 이끌어 역전을 노렸지만
커제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고
초반 벌어진 차이를 극복해내지 못하고 패하고 말아
우승을 확정지은 후 기뻐하는 커제
커제는 이세돌과의 승리로 중국에 우승을 선사함과 동시에
이번 대결까지 이세돌과의 상대 전적에서 8승 2패로 거듭 앞서 나가게 된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사실상 이세돌은 커제에게 못 당한다는 말 밖엔 할 수가 없는 상황
바둑계의 판도는 이 패배로 완전히 커제의 중국에게로 넘어가고 말았어
이세돌의 나이가 거듭 아쉽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며칠 뒤 이어진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
이 대결은 대결이 성사되고 난 이후부터
줄곧 전 세계 언론의 기사를 쏟아내게 하며
엄청난 관심을 모았어
1997년 러시아의 세계 체스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가
IBM 社의 인공지능 딥블루(Deep Blue)에게 패하는 순간
아시아권에 바둑이 있다면
서양에는 대표적인 보드게임으로 체스가 있지
1997년 미국의 IBM이 개발한 딥블루는 인간 체스챔피언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어
이때에도 인간이 인공지능에 곧 지배를 당하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많이 나왔어
하지만 이 역사적인 대결도 금방 잊혀졌지
잠시 잊혀졌던 이 역사적인 사건을 이후로
다시 펼쳐지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
그것이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의 의미였어
이세돌과 알파고(Alpha Go)
인공지능 개발자들에게 있어 바둑의 세계는
크나큰 도전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었어
오목,장기,체스 인간이 즐기는 보드게임 중 대표적인 것들은
이미 모두 인공지능에게 추월당한 상황이었지만
바둑만큼은 예외였거든
지금까지 바둑은
그 경우의 수가 무한해서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을 넘어설 수는 없다고 여겨졌어
바둑을 두는 인공지능이 처음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였지만
그 실력은 형편없었고
알파고가 나오기 전 까지도 인공지능은 인간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구글의 자회사인 '딥 마인드Deep Mind'가
올해 초 이세돌에게 도전장을 내밀었지
사실 인공지능 사업은 2000년대 부터 지속적으로
주목 받아왔던 차세대 사업시장이야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기술로서
생산,의료,금융,유통 등 거의 모든 사업에 접목시킬 수 있는
엄청난 잠재성을 가진 사업분야였기 때문에 미국은
이미 예전부터 사람을 능가하는 인공지능을 개발하기 위해 돈을 쏟아붇고 있었지
IBM 社의 차세대 인공지능 '왓슨Watson'
현재 인공지능 사업은 구글과 IBM의 양강구도가 이어지고 있는데
먼저 앞서나가기 시작한 것은 왓슨쪽이었어
2011년 미국 제퍼디쇼에 출연해 퀴즈 세계 챔피언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왓슨
2011년 미국의 인기 퀴즈쇼 '제퍼디 쇼Jeopardy Show'에 출연해
퀴즈 챔피언들을 꺾고 당당히 우승을 차지하며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 수준만큼 도달했다는 것을
대중들 앞에서 증명해내지
이 덕분에 IBM은 주가가 급등했고
인공지능사업 경쟁에서 IBM이 한 발 앞서나가게 된다
현재 인공지능 사업의 주요 적용분야인 의료기술
왓슨은 이미 미국에서
의료산업에 적용되어 암환자들을 위한 프로젝트에 사용되고 있어
구글의 알파고는 개발단계였던 것에 비해
왓슨은 이미 상용화 단계까지 접어든거지
왓슨이 의료기술에 특화되어 있다면 구글은 인공지능을 통해
수 년 전부터 무인자동차 시스템을 개발해왔어
그리고 현재 무인자동차 시스템은 개발이 끝나서
법적 제도만 갖춰진다면 언제든 상용화를 할 수 있는 단계까지 왔다고 해
구글의 무인자동차
구글은 이러한 경쟁에서 앞서 나갈 수 있을 만한
'계기'가 필요했어
세계인의 이목을 끌 수만 있다면
그 엄청난 '관심'이 엄청난 '투자'로 이어질테니까
그 계기가 될 수 있을 만한 것을 고민하던
구글이 선택한 것이
바로 '바둑'이었어
알파고와의 대결을 발표하는 자리의 이세돌
'알파고' 자체는 바둑을 주 목적으로 개발된 인공지능이 아니야
단지 인공지능의 학습방식이 얼마나 인간의 그것에 가까운 지를
보여주기 위해 인간 만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바둑'을 활용한 것 뿐이지
2015년 10월 유럽 바둑챔피언 판후이 二단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알파고
이세돌과의 대결 전에 이미 알파고는
유럽 바둑 챔피언 판후이를 꺾으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어
하지만 판후이는 본래 중국에서 최약체로 평가받던
프로기사였기에 아무리 유럽 챔피언이라지만
인간을 대표할 만한 기력은 되지 못 했어
때문에 이때까지도 인공지능의 능력이 뛰어나서 승리를 거둔 것이 아니라
판후이의 기력이 형편없어서 패배한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대결 전 자신감을 내비치는 이세돌
그래서 이세돌도 처음에는
알파고를 상대로 '5대0 혹은 4대1'의 승리를 자신있게 예측할 수 있었던 거지
알파고 바로 이전의 인공지능들은
프로기사를 상대로 호선은 어림도 없고
접바둑으로도 될까말까한 수준이었기에
이세돌이 이런 자신감을 보인 것도
무리는 아니었어
나도 이때까지는 당연히 이세돌이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예측은 모두 빗나갔다
결과는 4:1로 이세돌의 처참한 패배
알파고와의 패배 후 괴로워 하는 이세돌
이세돌의 바둑을 예전부터 지켜봐 왔지만
이때 만큼 힘들고 괴로워 보인 적이 없었어
아무리 이세돌이
팬들의 관심과 승부에 걸린 부담감을 즐기는 타고난 승부사라 할지라도
알파고와의 대결은 자신의 바둑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수 있는 것이었니까
하지만 이세돌은 완전무결해 보였던 알파고를 상대로 1승을 거두며
알파고의 파훼법을 어느 정도 제시해주었어
그러나 알파고는 지금도 계속 개발 중이고 성장하고 있기에
인간과 인공지능의 승부를 다시 한다 해도
인간이 승리를 거둘 수 있는 확률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사실 아무리 바둑이 복잡한 게임이라해도
인공지능의 발전을 인간의 힘으로 막는 것은 불가능이었어
다만 그것이 생각보다 빨리 온 것 뿐이지
이세돌이 알파고에 패했다고 해서
바둑이 끝나는 것은 아니야
알파고에게 졌다고해서 사람들이 바둑을 즐길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니니까
대결이 끝난 후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있는 이세돌과 알파고의 개발자 데미스 하사비스
이세돌은 대결 후에 구글의 개발진들을 향해 깊은 존경심을 전한다는
소감을 밝혔어
인공지능이 도달한 수준을 직접 느끼며 패배 후에 괴롭기도 했지만
반대로 즐겁게 승부에 임하기도 했다고 해
구글의 개발자들 역시 인간 대표로 대결에 나선 이세돌에게
깊은 존경심을 밝혔지
친필 사인이 담긴 바둑판을 선물하는 이세돌
그렇게 역사적인 대결은 마무리 되었고
이세돌은 올해 개최되는 응씨배에서 우승을 거두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고 해
이세돌이 두고두고 아쉬워 하는 것이 응씨배 우승이거든
이세돌이 꼭 이 대회에서 우승했으면 좋겠다
이세돌에게 관심이 많은 게이들은
이 대회를 챙겨보면 보는 재미가 더 할거라 생각해
'한국 바둑계 최강자의 마지막 계보를 잇는 기사'
'승부를 두려워 하지 않고 오히려 위협을 즐기는 승부사'
불의에도 굴복하지 않는 그의 인생에서
뜨거운 열정을 느낄 수 있었어
이상으로 바둑 정보글 시리즈 마지막 [쎈돌 이세돌]편이 끝이 났어
알파고와 관련된 부분은 대부분의 사람들도 잘 알고 있을거라 생각해서
길게 끌지 않고 앞의 커제와의 대결 부분을 중점적으로 구성해봤어
처음에는 그냥 심심해서
바둑에 대한 글을 한 번 써볼까 해서 시작했는데
의외로 사람들이 좋은 반응을 보여주고 응원도 많이 해줘서
즐겁게 써내려 오다보니 여기까지 쓰게 됐네
이창호,이세돌 편을 쓰면서
나도 몰랐던 부분도 자세히 알게 되었고
바둑에 대한 흥미도 더 생기는 좋은 경험이었어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졌다고
절대 바둑이 끝나는 건 아니야
패배에도 다시 일어서는 이세돌의
승부사적 기질에서 사람들도 용기를 얻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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