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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궁시렁 궁시렁

십자군 전쟁 "사자왕 리처드" 알아보자..

by 멀리던 2020.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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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여러분


자 그럼 십자군전쟁 '사자왕 리처드 1세'에 대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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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꾸 ㅍㅌㅊ?


리처드 1세는 한국에서 흔히 사자왕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별명은 사자심왕(Richard the Lionheart)이야

전장에서의 용맹함을 사자의 심장을 가졌다는 식으로 표현한 별명이지

서양사에서 워낙에 유명한 양반으로 중세 무용담에서는 빠지는 일이 없고 소설이나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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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킹덤오브헤븐 중 등장한 리처드 1세 잘생겼네.. 근데 조라 모르몬트 아니냐?


리처드 1세는 플랜테저넷 왕가(House of Plantagenet) 헨리 2세와 엘레오노르 사이에서 태어났어

그들 사이 자식이 8명 있었는데 그 중 남자가 다섯, 리처드는 셋째였다 

장남인 윌리엄은 어릴 때 떨어져 죽었고 차남인 헨리는 돌연사함

이제 남은 사내 자식이라고는 리처드, 제프리, 존이었는데 제프리마저도 사고로 뒤지고 만다


그의 아버지 헨리 2세의 권력은 말그대로 좆나게 쎘는데 그가 가진 영지는 왕국이라기보다 제국에 가까울 정도로 굉장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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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에서 핑크색, The plantagenet dominions라고 세로로 쓰여진 것 보이지? 저게 다 헨리 2세의 영지였다  리처드 금수저 ㅆㅅㅌㅊ


권력이 있으면 뭐하나 헨리는 자식농사를 망쳤어 아들 새끼들이 하나같이 지 아버지에 대한 효성이나 책임감 따위가 전혀 없었지

그걸 알고있던 헨리 2세는 아들들에게 영지를 나누어 주었지만 실제적인 실권은 여전히 본인이 쥐고 있었지 

그런데 김치녀 마누라 엘레오노르가 헨리 2세를 몰아내도록 자식들을 부추겼고 설상가상 프랑스의 루이 7세와 '존엄왕' 플리프가 이들의 후원자로 나섰지

결국 리처드를 비롯해서 헨리의 자식새끼들은 반란을 일으켰지만 3주만에 진압당한다

개빡친 헨리는 지가 뒤질 때까지 왕비를 감금시켜 버렸지만 자식이기는 부모없다고 아들들은 사면시켰지

근데 이게 큰 실수였던 거야 리처드의 어릴적 면모를 보자면 16살의 나이에 군대를 지휘해 반란을 진압했을만큼 군 지도자로서의 역량은 굉장했거든

헨리는 남은 두 아들 존과 리처드 중 존을 편애했는데 그게 리처드의 반란심리를 자극했다

위의 지도를 보면 헨리의 영지에서 남쪽, Aquitaine이라고 보이지? 프랑스 내륙에 존재했던 이 지방은 리처드의 고향이나 다르없었던 '아키텐'이라는 지방이야

원래는 어머니인 엘레오느르의 소유였던 영지인데 11살 때 상속재산으로 물려받아 공작을 지냈던 곳이었기에 애착은 남달랐지

쨋든 아들 존을 리처드보다 좋아했던 헨리 2세는 리처드에게 이 아키텐을 존에게 넘겨주라고 한다 여기에 좆나 빢친 리처드는 다시 반란

결국엔 아버지를 몰아내고 당시 나이 32세로 잉글랜드의 국왕이 돼 (패륜 ㅆㅅㅌㅊ)


잉글랜드의 왕인데도 불구하고 그가 자란 곳은 프랑스의 아키텐었으며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스스로를 프랑스인으로 생각했음

리처드 재위기간 동안 잉글랜드에 머문건 단 6개월 뿐이었어 실은 그에게 잉글랜드란 존재는 그의 야망이었던 십자군 전쟁을 위한 군자금 마련 용도에 불과했지

"만일 그것을 살 수 있을 만큼 돈 많은 구매자만 있다면, 나는 런던까지도 팔아넘기겠다." 

리처드의 이 말이 모든 걸 설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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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가 십자군원정을 떠날 당시 사람들이 몇번 들어봤을 '살라딘'은 예루살렘을 탈환했어

이 소식을 들은 리처드는 프랑스 왕과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와 연합하여 예루살렘 재탈환을 위해 십자군 원정을 계획하지

즉위한지 얼마되지도 않은 시점에 돈될만한 것은 모조리 팔아치워 전쟁 자금을 마련한 리처드는 지체없이 원정을 떠나 

하지만 이 원정길 도중 프리드리히가 죽고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던 프랑스 왕마저도 불화로 돌아가버려

결국 영국군만 홀로 원정을 계속하게 되는데 이게 결과적으로는 리처드를 사자심왕으로 유명하게 만들어주지 


단 한명, 일신의 힘으로 전세를 역전시키며 전투를 씹어먹었다고 한다면 팩트폭행 좋아하는 우리 사람들은 믿을까? 

리처드의 상대였던 살라딘은 전투마다 서기관을 동행했는데 그 덕분에 리처드에 관해 보다 팩트에 가까운 기록들이 남아 있지 ( 적이었으니 일부러 부풀려가며 칭송하진 않았겠지? )

더욱이 그의 이름인 리처드 1세보다 더 유명한 사자심왕이라는 별명은 자신들의 왕이었던 영국인들이 지어준 것도, 기독교인들도 아닌 직접 칼쳐맞아가며 당했던 이슬람교도들이 지어준 것이었으니 으레 전쟁마다 만들어지기 마련인 허황된 신화라고만 치부할 순 없을 것 같아


전쟁에서의 그의 활약은 말그대로 먼치킨이자 인간흉기였는데 상대였던 살라딘을 처참히 묵사발 냈지

살라딘은 그럼 맨날 일찐한테 씹털리는 좆찐따였느냐?

아이유브 왕조의 창시자로서 살라딘은 위에 적었듯 예루살렘을 탈환한 이슬람의 영웅이자 천재 지략가로 불리는 제왕이었어 (살라딘 ㅆㅅㅌㅊ)


자 그럼 그 대단했던 살라딘을 리처드가 어떻게 묵사발 시켰는가 살펴보자

'리처드왕의 편력기'는 리처드 1세에 대한 여러 기록들이야

이는 당시 유럽기록들과 이슬람 쪽의 기록들을 대조하여 뽑아낸 거지


우선 케사레아 전투(Battle of Kesarea)야

1191년 8월 30일 리처드가 이끄는 군대와 살라딘의 정찰대가 마주치며 벌어진 전투지 

살라딘은 곳곳에 병사들을 매복시켜 놓았고 리처드의 군대가 보이자 포위하며 공격했지만 리처드는 아랑곳않고 닥치는대로 썰어버렸다고 해 

그 와중에 케사레아 근처에서 당시 후위에 있었던 브루고뉴 공작의 프랑스군(발음 존나 어렵네 쒸발)이 살라딘의 투르크군 매복에 당하며 위기에 처하자 리처드는 혈혈 단신으로 적진 한가운데로 들어가 투르크군을 씹창냈어


이건 편력기 기록이야

"그것을 본 리처드는 당장 구조에 나섰다. 그러고는 벼락같은 고함을 치며 투르크 군에게로 달려들어 좌우에서 그들을 칼로 찔러 죽였다. 투루크 군은 우물쭈물할 틈도 없이 옛날 블레셋 사람들이 마카비의 얼굴을 보고 사방 천지로 도망친 것처럼 리처드 왕의 얼굴을 보자 혼비백산, 머리없는 투르크 군의 시체 몇 구를 우리 손에 남겨놓고 산꼭대기까지 줄행랑쳤다. 리처드는 이런 위기가 생기면 늘 전면에 나섰다. 그러고는 '멧돼지 같은 고함을 치며' 적의 머리를 박살냈다."

(ㄷㄷ 머가리 박살내네..)


리처드의 이와 같은 패기 덕분에 이날 십자군은 승리하고 본군이 머무는 지역까지 무사히 진군할 수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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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아르수프(Battle of Arsuf)전투야 

십자군은 대부분의 전투에서 숫적인 열세에 있었는데 아르수프는 그나마 쪽수가 비슷했던 전투야

케사레아 전투 직후에 리처드는 살라딘에게 조약을 맺자는 내용의 사신을 보내


리처드 :야 군대 철수시키고 팔레스타인 내놔라 


살라딘 : 닥쳐 씨발 미친놈이냐?


협상은 결렬되었고 곧바로 양측은 전투를 준비하게 되는데 장소는 인근 아르수프 근처의 숲이었지

리처드는 2만의 십자군을 동원했는데 전위와 후위에 기병대를 배치하고 보병들은 밀집대형으로 해변가를 따라 움직였어

오후 3시쯤 3만여명의 투르크군이 달려들었고 전투가 시작되었어

막 전투가 벌어지는 찰나에도 리처드는 밀집대형 유지를 명했고 계속 전진했어 

덕분에 공격해대는 투르크군과 수비하며 조금씩 전진하는 프랑크군의 전투양상이 펼쳐졌지 

전투가 시작된지 한참 후 구호기사단이 붕괴되어버릴 지경에 이르자 지휘관들이 리처드의 지원을 요구해오기 시작했어 

하지만 리처드는 조금만 기다리라며 수비만을 고집함

구호기사단이 거의 씹창날즈음 2명의 기사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성 조지를 위하여!"를 외치며 달려나가는데 거기에 맞춰 리처드도 본격적인 공격을 시작해

살라딘은 매 전투마다 서기관을 동행했다고 했지? 여기서 그의 서기관이었던 바하 앗 딘 (Baha ad din)은 이렇게 기록했어


"나는 이들 기사들이 보병 부대 중간으로 모여드는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 그들이 창을 부여잡고 마치 한 사람이 소리치는 것처럼 전쟁 구호를 복창하자 보병부대가 길을 활짝 열어주었다. 그들은 그 사이를 뚫듯이 질주해나와 단번에 사방으로 돌진해가며, 일부는 우익으로 일부는 좌익으로 또 일부는 중앙으로 밀고 들어가 우리 군을 초토화시켰다."


리처드는 일부 지원 병력을 씹털린 구호기사단 쪽으로 보내고 본인은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전투를 휘젓기 시작했지


"아군이 혼란에 빠진 것을 알자 리처드 왕은 말에 박차를 가해 속도 한번 늦추지 않고 날듯이 구호기사단까지 도착해 원조 부대를 데리고 간 부하들을 그곳에 풀어놓았다. 그러고는 투르크군을 밀치고 나아가 담력같은 소리를 지르며 치명적인 일격을 가해 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의 앞에서 적들은 양옆으로 픽픽 쓰러져갔다. 그렇게 그는 홀로 맹렬하게 투르크군을 밀어붙이며 적을 쓰러뜨렸고 그의 칼 끝을 피해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느 쪽을 공격하든 그는 자신을 위한 공간을 널찍이 확보한 가운데 사방으로 칼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그가 마치 낫으로 곡식을 베듯 적병의 머리를 계속 내려치며 가증스런 종족을 분쇄해나가자, 자기 동료들의 죽어가는 모습에 놀란 적병들은 전보다 더 넓은 공간을 그에게 만들어 주었다.

(중략)

위풍당당한 키프로스 말 위에 앉아 있던 리처드 왕은 자신의 정예부대를 이끌고 언덕으로 올라가 투르크 군을 만나는 족족 요절을 냈다. 적군들이 그의 앞에서 쓰러지면 투구들도 함께 쨍그랑거렸고, 한 번씩 내려칠 때마다 그의 칼에서는 불똥이 튀었다. 이날 그의 공격이 얼마나 맹렬했던지 투르크 군은 곧 불가항력적인 그의 공격을 이기지 못하고 우리 군에게 무조건 길을 내주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무력 ㅍㅌㅊ? 


이후 3번의 전투가 더 있었고 정신이 바짝 든 살라딘은 적극적으로 군을 지휘하며 이끌었지만 전세는 이미 리처드 쪽으로 기운 뒤였어

십자군이 이 전투에서 700명의 병력 손실을 입은 반면 투르크군은 약 7000명이 전사하는 대패를 기록함

편력기에는 참패 이후 빢돈 살라딘이 총공세를 위해 한번 더 달려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때 리처드는 단 15명의 부하만을 거느리고 1차로 적들을 향해 달려가 십창을 낸 뒤 이후 십자군들이 합세하자 오히려 그들의 본거지로 밀어붙였다고 되어있어


당시에 대한 기록임

"(프랑크군이) 막사 준비에 전념이 없던 틈을 타 투르크 대군이 우리 군의 후위를 덮쳐왔다. 왕은 격투소리를 듣고 병사들에게 전투 명령을 내리며 그대로 말에 올라 15명의 부하만을 거느리고, '신과 성모께서 우리를 보우하사'를 큰 소리로 외치며 투르크 군에게 돌진해 갔다. 그는 이 구호를 연달아 외쳤고 나머지 병사들도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급히 그의 뒤를 따라 적에게로 돌진해 사라센 군을 그들의 본거지인 아르수프 숲까지 밀어붙였다. 그 후 왕은 막사로 돌아왔고 격렬한 전투에 지친 병사들은 밤새 휴식을 취했다. 다음날 병사들과 그곳에 가보니 32명의 아미르가 죽은 것을 확인했다."


여기서 아미르란 (아랍어 : أ ) 아라비아어로 '사령관', '총독'이라는 의미야 즉, 이슬람 세계에서 왕족과 귀족의 칭호로 사용되는 말이지

고로 졸개들보다야 어느정도 무예를 갖췄을 장군들을 학살하고 지나간거지 그냥 좆나 쎔


살라딘은 리처드가 소수의 병력만 거느리고 수천명의 아군을 씹창내는걸 보며 

"저 놈은 인간인가 사탄인가" 하며 웃픈 소리를 했다고 해

옆에 있던 서기관 바하 앗 딘은 "전장에 악마가 나타났다." 라고 이를 기록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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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기록만 보아도 이미 리처드는 씹넘사벽 인간병기지만 

그냥 서양의 레전드. 말이 필요없는 씹사기캐로 만들어준 전투가 있었는데 바로 야파(Battle of Jaffa)전투다


1192년 7월 살라딘은 야파 요새를 침공하는데 십자군은 이 전투에서 무슬림 역사가들마저 감동시킬 정도로 맹렬히 저항했어

하지만 이미 리처드에게 여러차례 묵사발 당해 독이 오를대로 오른 투르크군도 만만찮았던 덕분에 전세는 곧 불리해졌고 여기서 십자군은 꼬랑지를 내리고 투항의 뜻을 비춰 

살라딘은 항복을 받아들이면서도 그들의 목숨을 보장할 수 없다는 식으로 애매하게 말하지


"요새로 퇴각하고 도시를 포기하라. 지금 무슬림 군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뭔 말이냐? 살려주겠다는거여 아니야..)


잠시 후 무슬림 군대가 야파 시내 안으로 몰려들어오면서 온갖 약탈을 저지르는 한편 수비대의 생존자들은 성채에 틀어박히게 돼 

마침 이 소식을 들은 리처드는 풀발기하며 군대를 소집해서 곧장 야파로 달려갔지

리처드 갤리선의 나팔소리를 들은 살라딘은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해안에 군대를 배치하고 항복한 십자군 수비대에게 성채를 넘겨받아 방어용으로 쓰려고 함

리처드가 온 줄 모르고 있던 수비대는 성채를 넘기려 했지

이때 살라딘의 부하 중에서 인정 넘치는 늙은 영주 하나 때문에 뻘짓을 하게 돼

십자군을 지금 보냈다간 무슬림들이 그들을 도륙할거니까 차피 죽음 목숨이다 그러니 보내 줄거면 확실하게 안전한 퇴로를 마련해주자라고 노친네가 떼쓰는 바람에 성채를 넘겨받는 것이 지체되고 말지

이때 어수선한 틈을 타 49명의 수비대원이 성채를 빠져나오고 보니 

엥?

리처드의 범선과 갤리선을 보고 만거지

마음이 바뀐 수비대는 다시 성벽 안에 짱박혔고 바하 앗딘에게 항복을 철회한다는 서신을 보냄과 함께 무슬림 병사들을 급습하여 도시 밖으로 몰아냈어

(십자군 통수 ㅍㅌㅊ?)

여기서 개빢돈 살라딘이 성벽을 맹공격.

한시가 급한 상황에 리처드는 구조 요청을 듣지 못하고 배 위에서 야파 공략을 논의하고 있었어

이에 사제 한 명이 바다에 뛰어들어 범선까지 헤엄쳐 가 성채 안의 상황을 전하지


" 숭고한 왕이시여. 우리 병사들은 지금 전하의 구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저 도살자들의 칼날에 쓰러져가고 있나이다. 마치 도살을 기다리는 양들처럼 목을 앞으로 길게 빼고 있습니다. 수비대는 전하를 통한 하느님의 구원이 없는 한 그 자리에서 죽고 말 것입니다."


말을 듣자마자 리처드는 배를 몰아 야파로 돌진

정박하기도 전에 뛰어내려 무슬림들을 공격한 리처드는 선박용 신발만 신은 채 80여명의 병사만으로 야파 요새 6만 2천의 이슬람 군을 압살시킴

실제로 이 전투에서 리처드군이 가진 것은 단 3필의 말뿐이었어

믿기 힘들지만 이건 기독교 쪽 역사로도 무슬림 쪽 역사로도 확인 가능한 부분이니 놀라울 따름이지

살라딘 옆에서 야파 요새가 단 1명의 무력으로 뺏기는걸 보고 있던 무슬림 역사가는 "저 자는 인간이 아니다." 라고 기록함

전투 직후에는 살라딘이 보낸 의전관 아부 바크르에게

"당신들의 그 전능하신 술탄은 어째서 내 모습만 보고도 도망치신 거요? 맙소사 나는 갑옷은 고사하고 싸울 준비도 없이 선박용 신발만 신고 있었는데 말이오. 대체 살라딘은 왜 도망을 갔던 것이오?" 라며 조롱까지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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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 여러분? 사자왕 리처드가 얼마나 개ㅆㅅㅌㅊ 무인이었는지 대충 감이 와?


하지만 전장에서 레전드로 남은 리처드의 말로는 좋지 않았어

십자군 전쟁으로 해안의 몇몇 지방을 수복하는데 성공한 리처드였지만 고국의 동생 존이 원정 당시 사이가 안좋아 군을 되돌렸다고 한 프랑스 왕 기억나? 그 새끼랑 짝짝꿍하여 프랑스 내 리처드의 영지를 빼앗으려고 반란을 일으키지

반란의 소식을 접한 리처드는 예루살렘 탈환을 포기하고 통행증을 발급받은 순례자들의 성지 통행권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살라딘과 휴전협정을 맺고 곧바로 철수해

배멀미가 심해 바닷길을 싫어했던 리처드는 육로로 이동하게 되는데 여기서 오스트리아의 레오폴드 5세에게 붙잡혀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6세한테 팔림 

과거 원정길에서 리처드는 국왕인 자신의 깃발과 함께 펄럭거리고 있다는 이유로 레오폴드의 깃발을 진흙탕에 던져버린 일이 있었는데 이에 앙심을 품은 결과였지

결국 잉글랜드 국민들의 혈세로 몸값을 치르고 풀려난 리처드는 고국에 돌아오는데

반역에 끼어있던 프랑스 왕은 이를 "사탄이 돌아왔소" 라고 표현함

아니나 다를까 반란군들 묵사발 당함


리처드는 42세의 이른 나이로 죽었는데 좀 어처구니가 없어

한 농부가 리모주의 자작 영지에서 묻혀있던 황금을 발견하는데

이게 양이 좀 됐었나봐 자작은 이걸 리처드에게 넘겨주길 거부했고 이에 리처드는 샬뤼라는 지방에 있는 자작의 성을 포위공격하게 됐지

그러던 중 밤에 순찰을 돌던 리처드는 어디선가 날아온 세뇌에 맞아 쓰러지게 되는데 존나 운없게도 상처가 곪는 바람에 허무하게 죽게 돼


리처드는 ㅅㅌㅊ 무장이었지만 일국의 왕으로서는 꽝이었어

전쟁에만 열중하는 바람에 내정은 내내 관심 밖이었지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제위기간 대부분을 전쟁터에서 보냈어

때문에 몇몇의 역사학자들은 리처드 1세를 "사자의 심장을 가졌으나 사자의 영혼은 가지지 못했다" 라고 저평가하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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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줄 요악

1. 사자심왕 리처드 1세는 전략 좆까 단신의 힘으로 전세를 좌지우지함 

2. 허황이 아니라 실제로 적국이었던 이슬람도 빨아주던 ㅅㅌㅊ 무력을 가졌었음

3. 내정은 좆나 못해서 병신으로 기억되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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