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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궁시렁 궁시렁

우리가 잘모르는 기가막힌 임진왜란... ㄷㄷ

by 멀리던 2021.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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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행주대첩)

 

사람들은 임진왜란 당시, 7시 지역의 수군을 통솔하던 좌수영의 이순신 장군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조선군은 신나게 털리고 개박살만 났다고 생각할거야.

 

하지만 그게 아니다.

 

임진왜란 최초의 조선군 승전보는 누가 올렸는지 게이들은 생각해본 적 있냐?

 

권율? 김시민? 곽재우? 이순신? 사명대사?

 

 

 

사실 그보다 더 일찍, 조선군 최초의 대일본 승전을 기록한 명장이 있었으니 바로 경상도 방어사, 부원수 '신각' 장군이었다.

 

한양은 임금 선조와 조정대신들이 버리고 탈주한지 오래였고, 일본군의 제 1본대는 경기와 한양에 무혈입성해서 신나게 먹고 즐기고 있었다.

 

신각 장군은 경기도 양주에서 일본군을 기습해서 무려 부장급을 비롯 60명의 머리를 베고 첫번째 승전보를 올렸음. 그것이 바로 '해유령 전투'. 모든 백성들이 길거리에 나와 환호했다고 해.

 

자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런 중요한 사건을 국사책에서 배우지 않느냐?

 

 

 

 

(국립민속박물관 형정도)

 

응 왜냐면 조선의 조정 대신들은 신각 장군이 '제 멋대로 다른 곳으로 군대를 돌렸다' 고 선조에게 꼰질렀고, 분노한 선조는 신각 장군을 '처형' 해버렸음.

 

그런데 신각의 목을 자르러 떠난 선전관 (임금의 명을 집행하는 무관) 이 떠나자 마자 신각의 첫번째 승전보가 날아들었고 선조는 당황해서 부랴부랴 명을 거뒀으나 이미 신각 장군은 억울하게 참수당해버림. 정말 기가막힌 임금과 대신들의 콜라보레이션.

 

 

" 신각은 비록 무인이었으되 청렴 신중한 인물이었다. 이 큰 전공을 세우고도, 국난에 큰 힘을 써야 할 중요한 무장을 아무 죄도 없이 죽여버린 것이다. 그에게는 90살이 넘은 노모가 계셨으니 이야기를 들은 모든 백성들이 애통해하며 눈물을 흘렸다 " ㅡ 징비록, 류성룡.

 

 

임진왜란이 끝나고도, 당시 신각 장군을 음해했던 권력자들과 그에 넘어간 선조의 무능한 치부를 드러내기가 껄끄러웠는지 전적비나 사당 하나 세워주지 않고 기록으로만 방치해뒀음. 조선의 졸렬성 에휴..

 

 

3줄요약 입니다

 

 

1. 임진왜란 조선 최초 승전 해유령전투 신각장군

2. 피난간 조정대신들에게 무고 음해당함

3. 선조가 신각장군 죽여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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