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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궁시렁 궁시렁

[삼국지]정사 속 관우에 대해 제대로 알자

by 멀리던 2022.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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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삼국지 정사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연의에서 날고 기었던 인물들이 제대로 된 역사서에서

 

현실성을 띈 내용을 접하면 실망해서 등장인물들을 평가절하하는 경우가 많다.

 

 근데 이건 시발, 삼국지 등장인물들이 병신들인 게 아니고 나관중이 쓴 삼국지 연의가 그냥 판타지 소설인거다.

 

 삼국지 연의 같은 영웅들이 실존했다고 믿는 새끼들은 아마 호그와트 학원이 진짜로 있다고 믿는 새끼들일 듯;

 

 그것도 지금 우리가 읽는 소설은 나관중 원본에 비해서 많이 순화된거다.

 

 나관중 원본에선 관우가 번성 전투에서 하늘의 부름을 듣고 승천하는 걸로 형주 공방전이 끝난다.

 

 

 

 

 

 

 하지만 정사 삼국지가 진리냐고 한다면 그건 또 아닌 게, 역사는 결국 승자의 기록이기 때문에 그게 100% 맞다고 확신할 수 없다.

 

 정사가 쓰인 서진이 위나라의 후예를 자청하는 사마 가문의 국가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위에 편애를 하는 느낌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래 전 역사기록에 접근하는 건 당시의 시대상과 기록이 쓰여진 배경, 작자 등을 전부 생각해서 조심스럽게 행해야할 일이다.

 

 사실상 타임머신을 안타면 100% 진실인 건 절대 모를거고, 삼국시대는 기록 자체도 적은 편이어서 더더욱 그런 부분이 많다.

 

 

 

 

 

 잡설이 길었는데 이제부터 삼국지 정사 속 관우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할게.

 

 정사를 중심으로 얘기할거고, 연의 내용은 아예 쓰질 않을거다.

 

 글 읽는 사람들은 이 점 참고해주면 고맙겠다.

 

 

 

 

 

 

 

 

 

 

 

 

 

 

 

 

1)관우의 의(義)


 선주(유비)는 두 사람(관우, 장비)과 함께 잠자며 같은 침상을 썼고 은혜가 형제와 같았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는 종일토록 시립했고, 선주를 따라 떠돌아다니며 고난과 위험을 피하지 않았다.

 

☞도원결의는 훗날의 창작에 불과하지만, 유관장은 형제처럼 지내며 죽는 그 날까지 서로를 배신하지 않았다.

 

 

 

 

 

 

 

건안 5년(200), 조공이 동쪽을 치자 선주는 원소에게로 달아났다. 조공은 관우를 사로잡고 돌아와 편장군에 임명하고 매우 두텁게 예우했다. 

당초 조공은 관우의 사람됨을 크게 여겼으나 그의 심신에 오래 머물 뜻이 없음을 살피고는 장료에게 이르길 

 

“경이 시험 삼아 그의 뜻을 물어보시오”

 

라고 했다. 그 뒤 장료가 관우에게 묻자 관우가 탄식하며 말했다, 

 

“나는 조공께서 후히 대우 해주시는 것을 잘 알고 있으나, 유장군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고 함께 죽기로 맹세했으니 이를 저버릴 수는 없소. 나는 여기 끝까지 머물 수는 없으나 반드시 공을 세워 조공께 보답한 뒤에 떠날 것이오.” 

 

장료가 관우의 말을 조공에게 보고하니 조공이 이를 의롭게 여겼다.

 

 관우가 안량을 죽이게 되자 조공은 관우가 필시 떠날 것임을 알고 포상을 더욱 무겁게 베풀었다. 관우는 하사받은 것을 모두 봉해 놓고 작별을 고하는 서신 올린 후 원소군에 있던 선주에게로 달아났다. 좌우에서 이를 추격하려 하자 조공이 말했다, 

 

 “그는 각기 자신의 주인을 위한 것이니 뒤쫓지 말라.”

 

☞관우가 유비에게 돌아가기 위해 다섯 관문을 돌파하고 여섯 장수를 죽인 오관육참장은 후대의 창작이지만, 조조가 관우에게 유난히 관심을 보인 건 사실이다.

 능력있는 인재를 아끼는 조조는 한낱 장수 하나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우는 온갖 부와 향락을 마다하고 결국 조조를 떠나 유비에게 돌아가고 마는데, 그 당시 유비는 조조에게 서주의 모든 터전을 빼앗기고 원소에게 몸을 의탁한, 군웅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처지였다. 조조라는 한창 잘 나가는 걸물을 마다하고 굳이 거지꼴인 유비에게 돌아간 이유는 오직 하나, 형제와 같은 의리 때문이다. 이런 관우의 의기 넘치는 모습은 후대에 두고두고 칭송을 받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

 

 

 

 

 

 

 

 

 

 

 

 

2)관우의 무(武)

 

"손권이 이제 막 자리에 오른지라 해내가 그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조공께선 천하에 적이 없고 이제 막 형주를 점령하셔서, 그 위엄이 강표에 떨쳤으니, 손권에게 비록 지모가 있다한들 능히 혼자서 감당할 수 없습니다. 유비에겐 빼어난 명성이 있고, 관우와 장비는 모두 1만 명을 상대할 수 있으니, 손권이 필히 그를빌어 우리를 막으려고 할 것입니다. 세력을 풀어 나누기는 어렵고, 유비의 도움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으니, 또한 죽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정욱전

 

☞사람들이 연의의 영향으로 삼국지 내 최강의 무장을 여포라고 생각하지만 정사에선 다르다.

 정사에서도 유명한 맹장들의 용맹에 대한 찬사가 많지만, 그 중에서도 만인지적(萬人之敵)이란 최고의 찬사를 받은 건 오직 관우와 장비, 둘 뿐. 위에 있는 정욱전 외에도 정사의 기록엔 관우와 장비의 무용을 찬사하는 온갖 글귀가 즐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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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소가 대장 안량을 보내 동군태수 유연을 백마에서 공격하자, 조공은 장료와 관우를 선봉으로 삼아 이를 공격하게 했다. 관우는 안량의 휘개를 멀리서 보고 말을 채찍질해서 달려가 많은 병사들 사이에서 안량을 찌르고 그 수급을 베어 돌아왔다. 원소의 제장들 중 당해 낼 자가 없었고 마침내 백마의 포위를 풀었다.조공이 표를 올려 관우를 한수정후에 봉했다.

 

☞위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관도대전 당시 원소는 안량에게 대군을 줘서 백마를 포위하게끔 했다. 거기에 대응해 조조가 안량을 무찌르기 위해 출전하는데, 그 중 선봉이 관우와 장료다. 이렇게 양측 군대가 대치한 와중에 관우는 그냥 닥돌해서 안량을 잡아족친거다. 더 이상 말이 필요하냐?

 군대의 상장 근처에는 당연히 부장과 병사들이 널려있기 마련인데, 그걸 뚫고 장군의 목을 베어 돌아온거다. 이 쯤되면 이게 무협지인지 역사책인지 의심이 간다.

 

 

 

 

 

 

 

 

 

 

 

 

3)통솔력

 

羽威震華夏. 曹公議徙許都以避其銳

관우의 위엄이 온 중국에 떨쳤다. 조공은 그의 예봉을 피해 허도를 떠날 것을 논의했다

-관우전

 

蜀,小國耳,名將唯羽

촉은 작은 나라로, 이름난 장수로는 오직 관우가 있었을 뿐입니다.

-유엽전

 

☞관우는 그 용맹함과 더불어 군대를 지휘하는 통솔력까지 정평이 나서 수많은 이들의 두려움을 샀다. 오죽하면 자기 자신부터 전쟁터를 전전하며 숱한 땅을 정복해 무제(武帝)라는 칭호까지 받은 조조가 두려워했을까? 하지만 그 명성이나 강해보이는 인상에 반해서 정사 내의 전적이 그다지 좋질 못한데 이건 오랫동안 터를 못 잡고 유랑한 유비 세력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거다.

 아무리 전장에서 지휘관의 능력이 중요하다곤 하지만, 그에 버금갈 정도로 중요한 게 군량과 병력이다. 위촉오 삼세력 중 가장 늦게 터전을 잡은 촉나라는 항상 다른 세력에 비해 열세일 수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연전연패하면서 여기에 붙고 저기에 붙는 유랑 생활을 해야만 했던거다.

 오히려 변변치 못한 세력이었다면 진즉에 죽고 소멸했어야 했는데, 끝까지 살아남아 삼국의 한 축을 맡게 된 걸보면 촉의 인사들도 충분히 영웅인 걸 알 수 있다. 이런 특성은 밑에 소개할 굵직한 네임드들과의 싸움에서 잘 드러난다.

 

 

 

 

 

 

 

 

 

 

 

승전

 

vs 안량(백마)

 

☞위에 설명해놓은 게 있으니 긴 말은 생략할게. 관우가 제대로 된 군대를 지휘하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을거다.

 

 

 

 

 

 

 

 

패전

 

vs 악진(청니), 문빙(심구)

 

☞이 당시에 유비는 서촉에 입성하기 위해서 많은 장수와 병력을 빼간 상태였기 때문에 형주군이 매우 열세였다.

 

 

 

 

 

 

 vs 감녕 (익양)

 

☞촉과 오는 형주 반환건으로 수시로 국경에서 국지전 혹은 무력 시위가 자주 일어났는데, 그 중 관우가 니들 말 안 들으면 당장 오나라로 공격 들어간다고 위협한 적이 있다. 이 때 감녕이 강가에 망루를 세우고 올테면 와보라고 도발했는데, 옛부터 오나라의 수군이 강성하고 상륙전이 위험 부담이 많은 싸움이기 때문에 관우는 전투를 피했다.

 일군을 이끄는 장군이라면 당연히 무모한 전투는 피하는 게 맞는거다.

 

 

 

 

 

 

 

패전

 

vs 조인 (번성)

 

☞번성 공방전 중 함락 직전까지 가지만, 때마침 나타난 서황의 원군이 관우를 패퇴시켜서 성공적으로 번성을 지켜낸다.

 

 

 

 

 

 

 

 

“육수에서 겪은 곤란으로 나는 참으로 급박했소. 그러나 장군은 변란에 처해서도 군사를 정돈해 적을 치고 보루를 단단히 했으니 불가동의 절조가 있다 할 만하

오. 비록 옛 명장이라 한들 어찌 이보다 뛰어날 수 있겠소!” 

-우금전

 

 이 해, 관우가 군사를 이끌고 번성에서 조인을 공격했다. 조공이 우금을 보내 조인을 돕게 했다. 가을, 큰 비가 내려 한수가 범람하고 우금이 이끌던 7군이 모두 물에 잠겼다. 우금은 관우에게 항복했고, 관우는 또 장군 방덕을 참수했다.

-관우전

 

승전

 

vs 우금, 방덕 (번성)

 

☞똑같은 전장, 똑같은 폭우 속에서 오로지 위군만 수몰되고, 촉군이 대승한 것을 보면 충분히 지휘관의 역량을 비교할 만하다.

 특히나 위나라의 7군은 정예였고, 우금은 위 기록에 나오는대로 조조가 크게 칭찬한 명장이었으며, 방덕 또한 서량에서 으뜸가는 맹장이었다. 때문에 이 패배는 조조에게 큰 충격을 주게 되지. 서황, 장료, 장합, 악진 등과 함께 5장군에 봉해질 정도로 뛰어난 우금을 패퇴시켰다는 것만으로도 관우의 능력이 증명될 정도야.

 

 

 

 

 

 

 

패전

 

vs 서황 (번성)

 

☞그나마 제대로 싸워서 패퇴한 게 서황과 싸운 전투인데 이마저도 서황 쪽이 병력이 더 많았다.

 하지만 이게 서황의 능력을 깎아낼만한 건 아닌 게, 서황은 내노라하는 위나라 장수 중에서도 장료, 장합과 함께 3톱을 달리는 명장이었고, 애초에 지지 않는 움을 하는 게 최고라는 건 병법의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오히려 열세한 세력으로 공격에 나선 관우가 잘못된거다.

 

 

 

 

 

 

 

 

 

 

 

 

 

 

 

 

 

 

 

 

 

 

 

4)담대함

 

 

 

 

 

 

 

 

 

 

 

 

 일찍이 관우는 화살에 맞아 왼팔을 관통 당한 일이 있었다. 그 뒤 비록 상처는 치유되었으나 몹시 흐리며 비오는 날이면 늘 뼈가 아팠다. 의원이 말했다, 

 

“화살촉에 독이 있어 이 독이 뼈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응당 팔을 갈라 상처를 내고 뼈를 깎아 내 독을 제거해야 하니 그 연후에야 이 통증이 없어질 것입니다.” 

 

 관우는 이내 팔을 뻗어 의원에게 자신의 팔을 가르게 했다. 이때 관우는 때마침 제장들을 청하여 음식을 먹으며 함께 하고 있었는데, 팔에서 피가 흘러 반기(盤

器-대야, 접시)에 가득 찼으나 관우는 구운 고기를 자르고 술잔을 끌어당겨 담소를 나누며 태연자약했다. 

 

 

 

 

 

 

 

 

 

 

 

 

 이후 직접 관우와 교전하여 관우를 노리고 화살을 날려 그 이마에 적중시켰다. 그 무렵, 방덕은 항상 백마를 타고 다녔으니, 관우의 군중에서는 그를 백마장군이라 부르며 모두 두려워하였다.

 

 

 

 

 

 

 

 

 

 

 

 

 

 

 

 

 

 

 

 

 

 

4)번성 공방전, 그리고 최후

 

 관우, 장비는 모두 만인지적이라 칭해진 당세의 호신이었다. 관우는 조공에게 보효하고 장비는 의써 엄안을 놓아주었으니 아울러 국사의 풍모가 있었다. 그러나 관우는 강이자긍(剛而自矜-굳세고 자부심이 강함)하고 장비는 폭이무은(暴而無恩-난폭하고 은혜롭지 않음)하여 자신의 단점으로써 패망하게 되었으니 이수(理數-도리,이치)의 상례로다.

 

 

 

 

 

 

 

 

 

 

 

☞지금까지 주욱 장점을 나열한 관우에게 있어 가장 큰 단점은 성격이 지독하게 굳세고 오만했다는거다. 형주라는 요충지를 다스리는 장군으로서 함께 강대한 위나라에 맞서야할 동지, 오나라를 수시로 자극했고 그 중 가장 유명한 일화가,

 

그 이전에 손권이 사자를 보내 자신의 아들을 위해 관우의 딸을 청한 일이 있는데, 관우가 그 사자를 모욕하며 혼인을 허락지 않으니 손권이 대노했었다.

 

 ─이거야.

 그래서 형주와 오는 겉으로는 위에 대항해 협력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속은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관계였지. 중원의 요충지를 책임지는 장군임에도 불구하고 처세술과 용인술이 부족했던거야.

 

 거기에 관우는 지나치게 자존심이 강해서 사고방식이 (형님, 나, 장비, 조운 > 제갈량 등 핵심 공신 >>>>> 넘사벽 >>>>> 기타 떨거지)  라서 부하들도 무척 오만하고 혹독하게 대했어. 유비가 몇 번이고 지적한 이 성격적 결함은 훗날에 그대로 돌아오게 되지.

 

 

 

 

 

 

 

 

 

 

 

☞그리고 이 관우의 오만함은 훗날에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게 돼.

 위나라에 일어난 후음의 난을 틈탄 번성 공방전이 바로 그것인데, 관우는 자신과 오나라의 사이가 안 좋음을 뻔히 알면서도 무방비하게 후방을 드러내놓은 채, 번성을 공격했어. 하지만 오나라는 제외하고라도 이 번성 공방전이 무모했던 것이,

 

번성 공방전 참전장수

위 - 조인, 만총, 우금, 방덕, 서황 + (대기)장료

오 - 여몽, 육손, 주연

촉 - 관우 외 듣보잡

 

 ─이었는데 보면 알다시피 위는 원래 번성을 지키던 조인과 만총을 필두로 수시로 네임드들이 지원을 오는데, 촉은 알려진 장수가 관우 한 명밖에 없어. 게다가 북진 당시 지원을 약속한 오나라는 일부러 기한을 늦추면서 형주를 삼킬 준비를 하고 있었고, 상용의 유봉은 관우의 원군 요청을 씹었기 때문에 지원이라고는 손톱만큼도 받을 수 없는 형편이었지. 이런 형편에 번성을 공격한 것 자체가 무모했다는거야.

 

 그럼에도 무모한 공격을 단행한 것에서 우리는 관우가 군대를 지휘하는 통솔력 자체는 뛰어났지만 자신이 이길 수 있는 흐름과 배경을 만드는 판단력, 그러니까 군략이 부족했다는 걸 알 수 있어.

 

 한마디로 자존심만 강하고 머리가 나빴다는거야.

 

 

 

 

 

 

 물론 이런 열세 속에서 우금과 7군을 박살낸 건 대단한 전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7군의 패잔병을 사로잡으면서 먹는 입이 늘어나니까 군량이 바닥나고 말아. 오나라는 입으로만 계속 지원을 말하고 있고, 위에서는 위나라의 지원군들이 속속 들어닥치고 있으니 다급해진 관우는 오나라 국경에서 군량을 강탈하는 걸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

 하지만 때를 기다리고 있던 오나라는 즉시 관우의 군량 강탈건을 빌미삼아 형주로 침입, 그대로 강릉과 공안을 집어삼키게 돼.

 강릉과 공안은 평소에 관우에게 업신여김 당하던 미방과 부사인이 지키고 있었는데, 그들은 관우에 대한 불만 때문에 저항 하나 없이 항복해버려.

 

 결국 자신의 오만함과 무모한 자신감의 대가를 치르게 된거지.

 

 이 부분에서 오나라는 이미 형주를 집어삼킬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경에 있는 군량이 빌미를 만들어내기 위한 미끼였다는 시각이 많아.

 

 

 

 

 

 

 앞뒤로 적에게 둘러쌓인 상황에서 어떻게든 탈출하려고 했지만 실패

 

 결국 포박당해서 죽음으로서 관우는 도원결의 종말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게 돼.

 

 

 

 

 

 

 

 

 

 

 

-3줄 요약 겸 총평

1.정사 속 관우도 천하에 명성을 떨친 맹장이었다.

2.하지만 자존심이 너무 세고 판단력이 나빴다.

3.그래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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