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 궁시렁 궁시렁

[역사]고구려의 멸망과 발해의 건국에 대해서..

by 멀리던 2022. 9. 5.
728x90

666년 6월 , 고구려 마지막 기둥이었던 대막리지 연개소문이 사망해 

 

  [ 연개소문 ]

 

권력의 정점에 서있던 연개소문이 죽자 자연스럽게 권력은 그의 아들인 연남생에게 집중됐어

 

연개소문에게는 연남생 , 연남건 , 연남산 이라는 세명의 아들과 연정토 라는 동생이 있었어 

 

   [ 연남생 ]

 

그중 첫째인 연남생은 동생들을 수도인 평양성에 남겨두고 지방으로 순시를 다녔는데 

 

측근들의 이간 때문에 동생들고 내부분열이 일어나 , 연남생은 권력투쟁에서 패배해 

 

국내성등 고구려의 주요 성들을 들고 당나라로 망명했어 군사기밀 같은 정보도 포함해서 말이지 

 

  [ 당나라 고종 이연 ]

 

당시 당나라의 황제였던 고종은 이때가 고구려를 멸망시킬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대대적인 병력으로 고구려 원정에 나서기 시작해

 

고종은 이세적에게 평양도행군총관 이라는 직책을 수여하고 신라에 파병을 요청해 

 

 

백만의 대군이 천리장성을 넘어 평양성으로 남하하기 시작했어 

 

1차 , 2차때도 막았으니 이번에도 손쉽게 막을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어 

 

원래 고구려의 전술은 적이 물자를 보급하지 못하도록 밭과 마을등을 불태우고 성에 박혀서 수성하는 전술이였어 

 

일명 청야전술 이라는 전술이였지

 

  [ 청야전술 ]

 

하지만 이 전술은 리스크가 너무 커서 당나라와는 다르게 1 , 2차 고당전쟁에서 잃은 손실을 복구하지 못했어 

 

또한 이번 원정에는 고구려의 최고 권력자였던 연남생이 당나라에 망명하면서 주요 성들의 위치와 

 

병력 배치도등 여러 고급 정보까지 소유했지 

 

 

 

고구려는 속수무책으로 밀려 왕도인 평양성까지 나당 연합군에게 포위당했어 

 

결국 668년 9월 고구려의 보장태왕은 대막리지 연남산을 데리고 나당연합군에 항복해.. 

 

공식적으로 고구려는 역사상에서 사라지게되지 하지만 이것으로 끝은 아니였어

 

고구려 멸망후 

 

옛 고구려가 소유했던 영토에서는 끊임없이 부흥운동이 일어났어 

 

또한 안시성주가 당 태종을 상대로 철벽수비를 하던 안시성을 포함한 요동지역의 성들은 아직 온전했어 

 

 

크게는 고구려의 왕족인 안승이 신라와 협력해 당과 싸우다가 전라북도 익산에서 " 보덕국 " 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검모잠 이라는 고구려의 관료가 황해도의 한성재령에서 부흥운동을 일으키지만 위에서 언급된 안승이라는 인물에 의하여 사살됐어

 

또한 고연무 라는 인물도 압록강 너머에 국내성과 오골성을 중심으로 부흥운동을 일으키지만 실패하고 보덕국에 망명했어 

 

이렇듯 고구려 유민들은 끊임없이 부흥운동을 일으켰지 

 

요동에 있던 보장왕도 고구려 부흥을 계획했지만 실패했어..

 

 

 

진절머리를 앓던 당나라는 고구려 유민들을 최대한 뭉치지 못하도록 당 제국 내외부등 여러곳으로 이주 시켰어 

 

 

 

거란족의 땅이던 영주를 거쳐서 산동반도 , 돌궐 , 장안등 고구려의 " 유력층 " 들을 강제로 이주시켰어 

 

이 유민들 중에는 훗날 서역을 평정하고 탈라스 전투에서 탈탈털린 

 

  [ 고선지 ]

 

고선지 장군부터 (* 정확히는 고구려 유민의 2세야 )

 

  [ 제나라의 시조 이정기 ]

 

당나라의 절도사직을 맡고 심지어 나라의 기틀을 마련한 이정기 장군등등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가서

 

 670년부터 나당전쟁이 일어나 당시 한반도 ㅡ 만주에 남아있던 대다수의 고구려 유민들은 신라에 동요됬어 

 

이후 당나라는 강성해지는 토번의 위협 때문에 신라와 화친하고 대동강 ~ 원산만 라인 까지의 국경을 잡고 

 

삼국 통일을 이룩했어 

 

 

 

 

이렇게 고구려 부흥의 꿈은 무산 되는것 같았지만..

 

 


 

696년 거란족의 이진충이 당나라에 폭정에 맞서 반란을 일으켜 

 

이때 고구려 멸망당시 영주로 끌려갔던 말갈 유민과 고구려 유민은 이틈을 틈타 탈출을 계획해 

 

대중상 ㅡ 대조영 부자가 이끄는 고구려 유민과 

 

  [ 대중상 ]

 

  [ 대조영 ]

 

고구려가 멸망할때 고구려 유민과 같이 끌려온 걸사비우가 이끄는 말갈 유민은 

 

  [ 걸사비우 ]

 

옛 고구려 내륙 깊숙히 들어가게돼 

 

거란족의 반란을 평정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당은 최대한 무력충돌을 피하기 위해서 

 

대조영의 아버지인 대중상에게는 " 진국공 "  이라는 벼슬과 

 

걸사비우에게는 " 허국공 " 이라는 벼슬을 내려 회유하려고 하지만 

 

이들은 단호히 거절했어 

 

결국 거란족의 반란을 평정하고 항복한 거란인

 

  [ 이해고 ]

 

이해고를 장수로 대조영 세력을 토벌하려고 군대를 보냈어 

 

 

 

두 군대는 결국 천문령 이라는 곳에서 조우하고 

 

서로에게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어 

 

이 싸움으로 대조영의 아부지인 대중상과 흑수말갈의 추장 걸사비우가 전사하는등 ,

 

피해가 매우 컸지만 주변에 있던 말갈 , 고구려 유민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추격대를 전멸시켰어 

 

 

 

이후 대조영은 동모산에서 국호를 진으로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를 건국했어 

 

713년에 측천무후도 대조영에게 발해군왕의 직위를 내리는등 

 

발해 건국을 인정할수 밖에는 없었지 [ 발해라는 국호도 이때 확정된거야 ]

 

이후 발해는 무왕 대무예 , 문왕 대흠무 

 

그리고 선왕 대인수까지 전성기를 맞아 해동성국이라고 불리다가 [ 학자들마다 의견차이가 조금씩 있으니 양해 부탁해 ]

 

마지막 왕 대인선때 야율아보기의 침입을 받고 허무하게 멸망했어..

 

허접한 정보글 읽어줘서 고마워 , 그럼 이만 !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