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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들 궁시렁 궁시렁

이창호 [전설의 상하이 대첩]

by 멀리던 2022.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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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바둑글이 많아서 좋다 헤헤..

 

새벽에 딸도 잡았겠다 할거없이 일베를 두드릴 너희들에게 한국 바둑계의 전설적인 사건 하나를 소개해보려고해.

 

바로 이창호 9단의 '상하이 대첩'이야

 

바둑을 잘모르는 사람들도 조훈현 9단 , 이세돌 9단, 이창호 9단 세명의 이름은 많이 들어봤을꺼라 생각해

 

 

그래도 잘 모르겠으면 먼저 이창호 9단부터 간략하게 알아보도록하자

 

 

 

- 바로 이 사람이 이창호 9단이야. 뭔가 포스가 느껴지지?

 

이창호 9단은 8살때부터 바둑을 시작했다고해 할아버지가 가르쳐줬다고하네.

이후 9살때 조훈현의 제자로 한국기원의 연구생이 되지. ( 연구생은 프로를 준비하는 아마추어라고 생각하면되 스타크래프트의 연습생 비슷한 개념이야) 

 

이후 최고위전이라는 기전에서 스승인 조훈현을 상대로 첫 타이틀 매치를 치르지만 패배 , 하지만 그후 KBS바둑왕전에서 첫타이틀을 획득하고

만 13살 (당시 3단)으로 한국 최연소 타이틀 획득이라는 업적을 세우게되

 

이후 4년뒤에는 동양증권배라는 '세계기전'에서 우승해 최연소 세계챔프 라는 업적도 가지게됬지

 

이만해도 어마어마한데 더 많은 기록을 살펴보면

 

국내 16기전 전부 우승

최다관왕 (13관왕)

세계 6대기전 모두 우승 ( 응씨배,후지쓰배,춘란배,삼성화재배, LG배,도요타배)

세계기전 우승횟수 23회 세계 1위 ( 2위-이세돌 15회, 조훈현 11회)

5년 연속 최우수 기사 수상

한해 통산 최다 대국 , 최다 연승, 최고승률, 최고승 기록 보유

( 111번 대국,41연승,86.7%, 90승)

 

 

 

 

 

 

이외에도 너무 많은 기록을 가지고있지만 뒤의 분량을 위해 이 정도만 살펴보기로하고

그럼 이제 본격적인 상하이 대첩에 대해 알아보자

 

 

 

 

- 당시 6회대회 사진은 구할수가 없어서 작년 10월에 열린 15회 사진으로 가져와봤어 헤헤..  

 

 

 

때는 2004년 10월 , 6회째를 맞이하는 '농심배 세계대회'가 열렸어 

당시 이대회는 한,중,일의 정상급 기사 5명이 팀을 이뤄 출전하는 국가대항전식의 대회였어

 

이 대회의 진행방식은 지금의 일게이들이 알기 쉽게 스타크래프트의 '위너스리그'로 생각하면될거같아.

먼저 전야제에서 각국 팀장들이 제비뽑기를 통해 부전승을 고르고

이후 주장,2장,3장,4장,5장을 엔트리로 제출한 뒤 5장 끼리 먼저 대국 이후 승자가 다음날 하루 쉰팀 4장하고 대국 하는 식으로 넘어가는 대회야.

 

만약 중국 5장 VS 일본 5장 -> 중국 5장 승

중국 5장  VS 한국 5장 -> 한국 5장 승

한국 5장 VS 일본 4장

 

이런식으로 진행되는 대회였어

 

 

 

..

 

 

당시 엔트리로는 한종진 5단, 안달훈 6단, 유창혁 9단, 최철한 9단 그리고 주장인 이창호선수가 선발전을 통해 선발됐어

 

물론 우리나라 엔트리가 강한것은 아니였어 딱보면 알겠지만 출전한 맴버가 그리 강한편은 아니였거든

한종진 5단의 경우엔 언론에서도 '복병'으로 취급했었고 안달훈6단은 국제전에선 슈퍼루키라고 봐야했지

 

그래도 당시 언론의 반응은 '설마..지겠어 '하는 느낌이였어

유창혁-최철한-이창호로 이어지는 라인은 상당히 탄탄한 편이였으니까

더군다나 한국은 이 대회에서 6회 연속 우승을 노리고있을만큼 당시 세계 바둑을 손에 쥐고 있는 상태였기도 했어.,

거기에 한술더떠 이창호 9단은  1회 농심배 예선 부터 지금까지 25연승을 기록하고있는 중이였지. 불패였어

 

일본은 사실상 이 대회에 별 관심을 두는편이 아니였어 별도의 선발전을 치르지도않고 서열순으로 대표를 내보냈거든

덕분에 언론에서는 " 중국을 조심해야한다 " 라던지 " 중국이 강할꺼다 " 라는 반응이 많았지

 

실제로 6회 농심배에서 중국은 칼을 갈고 우승을 차지하기위해 정예중의 정예를 선발했어

그동안 5회 대회 내내 이창호한테 시달려서 우승하지 못했던 전력이있었지

 

어찌됐든.. 각기 다른 3국의 사정을 품은 6회 농심배는 그렇게 막을 올렸어

 

 

 

 

 

뚜껑을 열어보니 이게 왠걸 , 한국 기사들이 초장에 줄줄이 박살나기 시작한거야

그냥 박살이 아니라 말그대로 개박살 나버린거지

 

대회가 시작하자 1라운드에서 한종진,안달훈,유창혁기사는 1승도 거두지 못하고 탈락

그나마 마지막 기대를 품게했던 최철한 9단은 단 1승만을 거두는데 그쳐버려..

 

결국 대회가 마지막 라운드에 접었들었을때 우리나라는 이창호 9단 단 한명밖에 살아남지못했어

그에 비해 일본은 장쉬 9단 ,왕민완 9단  중국은 러쉬허 9단 ,왕레이 8단 , 왕시 5단이 살아남았지

 

말그대로 국내 바둑계는 순식간에 충격으로 빠져들었어

정예맴버를 대리고온 중국은 그렇다치더라도 아무리 잘쳐줘도 한수 아래인 팀 전력 일본도 둘이나 살아남았는데..

 

그에 반면 중국 바둑계는 완전 축제 분위기였지 드디어 자신들이 한국을 누르고 단체전 우승을 가져올 수있는 더할나위없는 찬스였으니까

거기다가 마지막라운드는 자신들의 홈인 '상하이'에서 열리게 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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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바둑계가 더 충격에 빠진 이유는 바로 이창호 9단의 부진때문이였어

이창호 9단은 당시 최근 6국동안 1승 5패라는 저조한 성적을 가지고있었거든.

 

누가봐도 한국이 우승할 기미가 보이지않았어 아무리 25연승으로 한국에 5번이나 농심배를 우승 시켜준 이창호 였지만

슬럼프에 빠진 지금의 이창호9단에게 각국 최고수의 바둑기사들을 상대로  5연승은 불가능해보였지

 

중국 언론은 신나서 기사를 도배했는데 그중에선 " 이창호가 우승할 확률이 3%에 못미친다" 라는 기사도있었어

 

 

 

-불현듯 게임계의 전설적인 3.3대첩도 생각나서 가져왔봤어 .. 이떄도 2.69%였네 !

 

 

 

-이창호 이길 생각에 신난 중국인들과 긴장한 표정으로 대회장으로 향하는 중국3장 러쉬허 9단 (좌)  이래뵈도 아이큐 160 천재라고한다.

 

 

역사적인 대첩의 첫대국은 이창호 9단 과 중국의 3장인 러쉬허 9단이였어 2004년 11월 29일이였지

졌을때를 대비해 컨디션 난조라고 열심히 포장하던 국내언론이였지만 이창호 9단은 228수만에 불계승을 받아냈어

 

한국팀에 한줄기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거야.

그래도 아직 갈길은 멀었고 언론은 회의적이였어 이창호 9단의 컨디션이 살아난건 분명하지만

상대는 중국의 3장이였고 아직 일본과 중국의 고수들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지

 

 

 

 

- 이창호9단(좌), 장쉬9단(우) 이제보니 장쉬9단 잘생겼네

 

중국 3장을 물리쳤으니 다음 상대는 섬나라쪽국의 2장이였어

 

쪽국근성 어디 안가게 쪽국놈들은 심리전을 거는데

당연히 마지막 주장으로 등판할줄알았던 당시 일본1인자 장쉬9단이 이창호를 잡으러 2장으로 출격한거야

 

당연히 상대적으로 ㅈ밥인 왕밍완 9단이 먼저 나올꺼라고 생각하고있던 이창호9단에게 심리적 압박을 줘버린거지.

 

일본에선 이창호 9단을 막을수있는건 장쉬9단밖에없다. 라고 이야기하고

한국에선 장쉬9단을 이 전설적인 5연승을 하기위해서 가장 큰산 이라고 이야기했어.

 

양국의 자존심이 격돌한 이 대국에서 이창호 9단은 245수만에 불계승을 거두는데 성공해

 

 

 

 

 

 

 

 

- 왕레이 8단.. 짜오짜오 스럽지않게 생겨서 했갈렸네

 

 

여기까지왔는데 이창호9단을 누가막겠니..

처음부터 끝까지 이창호에 씹털리던 왕레이 8단은 184수만에 돌을 거두었어. (기권했다 라는말이야)

 

* 참고로 뒤에서 썩창 표정을 짓고있는건 중국기원의 왕이 부장이라고한다.

 

이걸로 3연승 .. 불가능해보였던 이창호9단의 5연승과 한국의 6연패가 보이기 시작한 순간이였어

 

 

 

-신난 아지매와 한국 대표팀 그리고 농심의 관계자들

 

 

이때부터 한국에선 설마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 내심 스폰서였던 농심도 활짝 웃은 눈치였어

한국 대표팀이 1라운드에서 대거 탈락하는 바람에 국내에서 대회인기가 시궁창으로 빠질뻔했으니까

 

당시 사진은 3번째 대국이 끝난뒤 이창호9단의 격려차 농심에서 만들어준 회식자리라네

그와중에 피곤해보이는 이창호9단이 눈에보인다 ㅠㅠ..

 

 

 

 

 

 

- 일본의 주장 왕밍단9단(좌) 거하게 한잔하신듯한 표정의 이창호9단(우)

 

뭐 .. 이쯤왔는데 설명이 더필요하겠니

이미 주장 카드를 2장으로 써버린 쪽국에 무슨힘이 있겠어

애초에 왕밍단 9단은 한국기사들에게 ㅈ밥으로 여겨지던 기사였다. (당시 세계대회 한국기사에게 6연패)

 

물론 이창호9단에게는 2승 1패로 앞서고있는 전적이였지만 이는 90년대 기록이였으니

쓸데없는 소리는 각설하고 이창호9단은 204수 끝에 불계승을 받아낸다.

 

 

 

 

 

  

 

 

이로써 4연승 믿기지않는 기록이 눈앞에 와있었다.

이때 당시 한국기자들은 거의 축제분위기, 일본과 중국의 기자들은 말을 잃었다고한다.

 

실제로 이 대국이 끝나고 복기하는 30분동안 한중일 기자가 30명정도 입실해있던 대국실안은 단 한마디의 소리도 들리지않았다고한다. 

그만큼 일본으로썬 충격적인 패배였고 중국기자들 또한 충격에 휩싸일수밖에 없었지

 

왜냐면.. 중국은 더이상 이창호를 막을 기사가 남아있지않았거든

 

 

 

 

 

 

- 마지막 경기 이창호 9단 (우), 왕시5단(좌)

 

드디어 2월 26일 , 결전의 날이왔어

사실상 경기는 시작과 동시에 끝난것과 마찬가지였어. 단수에서도 볼 수있듯.. 상대가 안되는 싸움이였지

물론 낮은 단수의 뛰어난 천재 신예들이 간혹 타이틀 보유자를 잡는 일은 있지만.. 상대는 4연승 중인 이창호 9단이였어  

 

당시 중국 기원의 왕루난 원장은 "왕시 5단이 잘둬선 이길수 없다. 이창호 9단이 대형사고를 쳐야지만 이길 수 있다" 라고 표현할 정도였으니까

이미 왕레이 8단이 져버린데서 전의를 상실한거야.

 

결국 왕레이 8단은 204수만에 돌을 던져

믿기지않는 이창호9단의 5연승, 그리고 한국의 6연패가 이루어진거야 . 세계 최정상급 기사를 상대 5명을 줄줄이 박살내버린거지.

 

이 5연승으로 이창호 9단은 농심배에서 1회부터 6회 대회까지 30연승이라는 괴물같은 기록을 세워버렸어.

 

 

 

 

 

 

- 당시 6회 농심배에 대한 중국신문의 기사 어마어마하게 대서특필된걸 알 수있다.

 

 

이 우승은 우리나라뿐만아니라 아시아 바둑계를 뒤흔들 일이 되버렸어..

 

인터넷바둑의 유명한 사이트인 '타이젬'은 27일 접속장애가 되는 사태가 발생해

농심에서는 이창호 9단의 불패 신화를 기념하기위해 불패라면을 만들겠다는 이야기도했어

진짜 나왔는지 안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사화된건 있는데 사진은 안나오는거보니 개구라였나보다.

 

일본은 의외로 무덤덤한 반응이였어 일찌감치 탈락한데다 오히려 쪽국근성 답게 우리나라의 우승을 깎아내리는데 주력했지.

안그래도 일본에서는 우리나라한테 바둑주권을 내준 이후 잔뜩 억눌려있었거든. 

하여간 패자의 개소리는 집어치고

 

진짜 폭동은 중국에서 일어났어.

한국에 대한 비난이고 뭐고를 떠나서 바둑뉴스 기사마다 중국기사들에 대한 갖은 욕설과 비난이 담겨있기 시작했지

그리고 한국이나 이창호에 대해서 까는 댓글은 무차별 폭격을 당했어 ㄷㄷ...

 

또한 이창호9단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어 ( 물론 이전에도 이창호9단은 중국에서 인기가 많았어)

나중엔 중국 총리 이름은 몰라도 이창호9단의 이름을 아는 중국인이 더 많다. 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돌았지

 

 

 

 

- 수상식 모습. 똥씹은 중국과 일본의 관계자, 그리고 농심관계자  .  -

 

 

 

 

 

 

이후 이창호9단은 세계 바둑역사에 전설적인 존재로 남게돼.

이미 압도적인 포스를 내뿜던 이창호9단이 확실하게 자기 존재를 신으로 올려버린 사건이 되버린거야

 

경기 이후 중국의 칭하오 9단은 넋이 나간 표정과함께 이런말을 남겼어

 

"한국 기사를 모두 꺾어도 이창호가 남아있다면 그때부터 시작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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