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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 궁시렁 궁시렁

김두한과 시라소니는 실제로 한판 붙었을까? [야인시대]

by 멀리던 2020.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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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끝난 화제의 드라마 [야인시대]를 아직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것이다.

순간 시청률60%에 육박하는 엄청난 초대박흥행을 기록한 이 드라마는 영화[장군의 아들]을 이후 또다시 전국을 김두한 열풍으로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드라마가 끝난후 아니,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역대 건달최고의 보스 김두한과 싸움기계 시라소니가 '맞짱'을 뜨면 누가 이길것인가??일 것이다.

수많은 사이트 그리고 게시판에서 그들은 사람들의 의견속에 가상의 대결을 펼쳐왔다. 떄로는 김두한이 떄로는 시라소니가 우세하다고 사람들마다 이유를 들며 의견을 내세웠다.



 

(드라마에선 끝내 이 둘의 가상의 대결이 이루어지지않아 더욱궁금증만 증폭시킨다)

 

흔히들 낭만파 주먹이라 불리는 1세대 주먹들, 그리고 정치깡패라 불리는 2세대 주먹들이 살았던 격동의 시대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야인시대가 시작하기 전인 2001년 가을 스무살에 접어들면서 이제는 고령이 되어버린 당시의 몇몇 큰형님??들을 만나서 이래저래 당시의 얘기를 들어보는 재미를 느끼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우리집안이 건달??출신이라는것이 아니고^^ 당시 그방면에서 활동하던 약간의 거물급 아저씨와 약간?의 친분이 있기에 소개소개로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니 일부 과장이 섞였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빠져들수가 없었다.

어쩌면 지금시대보다 생소한 그리고 낮설기만한 그때의 이야기에 더욱더 흥미를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20살때인가 아직까지 살아계신지는 모르겠지만 홍xx란분의 지인과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내 생각에 아마도 홍xx란분의 지인은 시라소니와 김두한에 대해서 가장 정확하게 알고계셨고 당시 상황을 과장이나 허풍없이 정확하게 기억하고 말해주셨다.

이러한 모든것을 종합해 [김두한과 시라소니 대립의 원인과 결과]란 자료를 만들어 지인들에게 보여주기도 하였다.(참 할일 없었더라는 생각이든다^^)

 

그럼 모든 상황을 종합해서 일단 1935년 상황으로 돌아가 하나하나 따져보도록 하자.

예전 김두한이 [노변야화]라디오 프로그램에 출현해 어렸을적부터 설렁탕을 잘먹어 키가 쑥쑥 자라고 덩치가 커졌다고 털어놓은바 있다.

이미 1934년 그러니까 김두한이 17살 되던해부터 종로바닥에서는 김두한의 이름이 이미 짜하게 퍼져있었다.

얘기대로 결론을 내려보면 김두한이 극장기도 왕초 구마적(고희경)을 꺼꾸러뜨린 때도 1934년이다. 그리고 김두한의 오야붕이었던 '김끼깡' 김기환이 일본순사를 구타한 사건과 술집에서 맥주잔을 오줌으로 바꿔넣은 뒤 순사에게 먹인 사건으로 순사들의 수배를 받던중 수사망이 좁혀오자 외투를 김두한에게 직접 입히면서 김두한에게 자리를 물려주던떄가 1935년 김두한이 18살되던해 겨울이었다.

 

약관 18세의 나이로 조선땅 한복판인 종로통에서 왕초 노릇을 하게 된 김두한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뭐든 시작하면 최고아니면 완벽을 추구하는 그의 성격에 단지 종로 한복판에서 왕초노릇을 한다는건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드라마에도 나오는 죽마고우 정진룡을 부산으로 파견해 부산을 먹어버리게 된다.(이후 정진룡의 존재는 부산에서 거의 절대적인 존재가 된다.)

그때의 관습은 종로에 오야붕이 되면 조선팔도의 남쪽지방은 거의가 고개를 숙이고 상납을 했다.

만약 그렇지 않게되면 부산처럼 처절하게 짓밟히게 될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수도권에선 나오다시피 마포,서대문,시구문등이 그리고 지방에선 수원,대전등이 불복하였지만 이들은 금세 정리가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북이었다. 당시 남쪽보다 돈벌이될 만한 상권등이 적었던 이북은 자기들만의 독자적인 세력을 가지고 있었고 종로의 오야붕이 누구던 간에 관심조차 없었다.

이에 김두한은 이른바 전국구 주먹의 계획을 세운다. 후에 일제징용시 조선팔도의 모든 주먹사단의 거물급들이 우미관에 모여들 수 있었던것도 바로 이 전국구 계획의 결과였다.

 

드라마에도 나오는 후에 김영태의 직계부하가 되는 박철수(망치)를 평양에 파견한다.

누구나 알겠지만 당시 평양의 오야붕은 이화룡이었다. 박두성이란 거물이 있긴하였지만 그는 독불장군에 소심한 성격이라 밑에 애들이 많이 따르질 않았다.(후에 박두성은 시라소니에게 패하고만다.)

이화룡은 어려움이 있으면 서로돕되 중요한 안건에 있어서는 종로의 결정을 따르라는 김두한의 요청을 처음엔 거절했지만 실제 직접적으로 마주칠 일은 별로 없었기에 대충 수락하고 만다.

개성에는 드라마에도 나오듯이 문영철과 김무옥을 보내 항복을 받았다고한다(무력으로) 이렇듯 평안남도의 노른자 지역은 모두 종로와의 유대관계를 결정했으나 유독 평안북도 특히 신의주에 주먹들은 제안을 거절했다.

신의주에 특사를 파견했었던 김두한은 계획이 틀어지자 '털빠진개고기'와 병수를 신의주에 파견하기에 이른다 물론 이때는 협상이 아니라 여차하면 엎어버릴 기세로 건장한 주먹들을 몇십명 대동하고 갔다.

위기감을 느낀 당시 신의주 오야붕 정팔은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시라소니를 불러들이기에 이른다.

'털빠진 개고기'와 병수는 시라소니와 맞상대를 걸어 처참하게 당하고만다.

이 사건으로 김두한과 시라소니는 서로의 이름과 명성을 멀리서나마 들을 수 있는, 그리고 서로에 대해 악감정이 싹트는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이다.

 

그리고 둘이 다시만난건 1946년 종로회관에서였다.

공산화된 이북에서 빨갱이들의 등쌀에 밀려 내려온 북쪽의 주먹들이 김두한이 양보해준 명동에 자리를 잡게되었다.

평안남도의 이화룡과 평안북도의 정팔이 주먹들을 데리고 월남해 명동에서 생활하였지만 두 거물급 조직이 좁아터진 명동에서 함꼐 살기엔 아무래도 좁았다.

먼저들어왔던 이화룡은 정팔을 쫓아내기 위해 둘은 서로 으르렁 거렸다. 상대적으로 세가 약한 정팔은 다시 시라소니를 종로로 들여와 힘의 균형을 맞추었고 결국은 평안도 출신이라는 하나의 큰 틀아래 이화룡과 정팔은 뭉치게 되었다.

이화룡이 정팔을 받아들인 이유는 이화룡사단의 최고의 강펀치인 '맨발의 대장'이라 불리는 김성순이 시라소니에게 한방에 나가떨어진 이후였다.

글이 길어졌는데 어쨌든  나와바리에 구속받지않고 조직도없이 독불장군격인 시라소니는 종로에 역도선수 이영환을 만나러 들어왔고 때마침 들어온 김두한 일행과 마주치게 된 것이다.

당시 상황이 우연인것 같아도 이미 김두한은 보고에 의해 시라소니가 있다는 것을 알고 들어온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제부터는 실상황으로 당시 홍xx가 1970년대 칼럼기자와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것이다.

 

"부산에서 올라온 정진룡이란 친구가 있었어요 따르는 부하들이 많았는데 당시 오야붕과 사이가 틀어졌습니다. 이제는 그 이유를 알았지만 당시에는 주먹일밖에는 몰랐기떄문에 정치적인 이유는 몰랐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지요.

서대문에서 지인들과 한잔하신것 같은 오야붕이 극장(우미관)으로 들어서더니 [그동안 바빠서 술마실 기회도 없었는데 종로회관에 가서 한잔하자]그러시더군요. 스라손(시라소니)가 종로바닥에 와 있다는 소문은 이미 사방팔방에 나있는 상황이었지요.

당시 극장에 나와  관철이 닷또상(신영균),발유(고경주),삼수(김삼수),영철이,무옥이,병수,꼬마(이상욱)가 있었는데 같이 종로회관으로 갔지요.

시간이 좀 이른시간이고 날씨도 쌀쌀해서 웬만하면 극장안에서 막걸리나 마시자고 닷또상이 말했지만 그날따라 유난히 종로회관을 고집하시더군요.

오야붕과 저희가 종로회관에 도착하니 누가 아는척을 해요. 딱보니 역도선수 영환이 형님이 앉아 계신거지요 뭐 이래저래 인사를 나누는데 영환이 형님 맞은편에 등을 보이고 앉아있던 사람이 슥 돌려다 봅니다. 갑자기 병수가 오야붕을 돌아보면서 소리치더군요 [형님 저xx가 스라손 입니다]

그러더니 오야붕이 그럽니다 [너이 개xx잘만났다 니가 우리애들 박살냈지 오늘 아주 죽어봐라]

저나 다른 일행들은 바짝 긴장했지요. 소문은 많이 들었었거든요 우리도. 그게 딱 우리쪽을 보면서 그래요[니가 김두한이냐?] 몰골도 서울역거지 같이 해가지고 이북사투리 지껄여대면서 오야붕에게 반말을 했지요. 우리가 두들겨 주려고 하는데 관철이가 이미 돌진하기 시작했습니다. 관철이 하면 130키로나 나가는 거구입니다. 딱 두방에 개구리처럼 바닥에 쭉뻗었지요.  

참 지금이야 웃지만 그때는 어이가 없었지요. 머 잠깐동안 아무도 달려들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래도 준비는 했지요. 오야붕이 말만하면 달려들어 바짝 태워버릴 생각들이었으니까요.

그떄 스라손이 [아무리 봐도 내가 나이도 많고 형님뻘 같은데 초면에 보자마자 욕지꺼리나 하고 달려드는건 예의가 아니지않나?]

뭔가 터질것같은 상황에서 오야붕이 껄껄 웃더니 [죄송하게 됐습니다. 전에 우리애들 둘을 혼내주셨다길레 도대체 누군지 한번보러 온것 뿐입니다. 안그래도 시끄러운 세상에 서로 으르렁 거릴필요가 뭐 있습니까 명동쪽 화룡이하고도 친구사이로 지내고 있습니다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형님]

스라손이 오야붕에게 다가가서 먼저 악수를 청하더니 병수와 관철이에게 정식으로 사과하였고 거기서 밤새술을마셨지요.

근데 주위에 찌라시들이 헛소문을 퍼트려서 소문에는 오야붕이 스라손에게 항복한걸로 되어있지만 사실 그렇지가않습니다.

그 당시 스라손은 바짝 긴장한 상태였어요 아무래도 우리쪽 숫자가 많은데다가 오야붕이 욕까지 퍼부어놨으니 그럴만도 했을겁니다.

다른 오야붕같으면 관철이를 그렇게 했으면 바로 달려들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오야붕은 그렇지가 않아요. 사람을 끌어들이는 능력은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자신할 수있습니다. 오야붕의 대범함과 사과도 화끈하게 하는 스라손의 남자다움은 승자도패자도 없었습니다."

 

결국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주먹잡이라 불리는 둘의 맞대결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홍xx의 말대로 고수는고수를 알아본 두 거물급의 맞대결은 무승부로 끝나고 말았다.

 

 

 

 

                    (40년대 당시의 시라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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