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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 궁시렁 궁시렁

신마적 엄동욱 한 시대를 풍미했던 남자 [야인시대] -3

by 멀리던 2020.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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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입니다.. 

 

해학기가 시라소니에게 당한 사건은 당시 봉천일대를 떠들썩하게 울릴만큼 큰 사건이었다.

이미 봉천일대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신마적의 오른팔인 해학기가 찍소리도 못하고 아작이 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해학기는 봉천시내의 '만도'병원에 입원하였고 봉천일대는 초 비상사태에 들어갔다. 봉천두와 신마적이 병원을 찾은것은 그날 자정이 훨씬넘어서였다.

술기운때문이었는지 신마적은 상당히 감정이 격해있었다. "내 그새끼를 아주 죽여버릴거야."

그러더니 현장에 같이있던 5명의 부하와 이xx의 따귀를 갈겨댔다. 워낙에 힘이 장사인 신마적이 따귀를 때리자 6명의 몸은 활처럼 휘어졌다.

친형제같은 해학기가 병원에 누워있고 같이 동고동락하엿던 이xx와 부하들이 시라소니 한명에게 도망쳤다는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봉천두가 신마적을 말렸다. 더불어 시라소니에 대한 설명도 해주었다. 자기도 시라소니에게는 한수접어주니 신마적에게도 웬만하면 참으라는 의미의 이야기였다.

그래도 신마적은 길길이 날뛰었다. 동생들을 모두 풀어 시라소니 수배령?을 내렸다. 몇날몇일을 이잡듯이 시라소니가 나타날곳은 모두 뒤졌다.

결국에 봉천 외곽의 산에서 시라소니가 사냥꾼복장의 사내들과 술을먹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어왔다.

사냥꾼 복장이라면 아마도 화적뗴가 틀림없었다. 혹시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이xx는 직계 동생들을 모두 끌어모았다.

이xx의 부하 20여명과 신마적과 해학기,사마귀,들소등 오야붕과 중간오야지급들도 밑에 있는 부하들을 모두 끌어모으니 200여명은 모였다.

이중 30여명은 권총과 엽총으로 무장했다. 신마적도 권총을 두르고 다리에는 단검을 찼다.

200여명의 문제의 사나이들이 시라소니가 있다는 산을 향해서 살기를 품으며 걸어가자 상인들은 물론이고 만주 경찰이나 일본 순사나 군들도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었다.

산 입구 약간 위쪽의 탁트인 평지에서 5~6명의 사내들이 술을 먹고있었다.

포병(권총과 엽총 소지자)들이 순식간에 앞으로 나와 이들을 포위했고 나머지 주먹들은 넓게 병풍을 쳤다.

"내 동생 아작낸 새끼가 어떤새끼야"

갑작스러운 상황에 술을먹던 사내들은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해학기와 시라소니의 얼굴을 아는 동생들이 시라소니를 가르켰다. "형님 저놈이 시라소닙니다."

남루한 거지행색에 키는 땅딸보 같은 사내가 일어나더니 슥 걸어왔다.

 

"님자 동생들이 죄없는 내 친구를 먼저 때렸어야 기래서 사과를 시키려는데 다짜고짜 덤벼드니 내레 싸울 수밖에 더있갔어?"

전혀 두려운 기색없이 작은 눈을 부릅뜨고 신마적을 쳐다봤다. 때마침 소식을 듣고 봉천두가 허겁지겁 달여왔다.

"저 자식 건드려서 어쩔려고 그래. 저 새끼 이쪽 화적떼들한테도 형님 취급받는 놈이야 건드리면 일커져 적당히 하고참아."

봉천두가 신마적에게 조용히 말했다.

 

"거 웬만하면 싸우디말고 사이좋게 지내자우 알간?"

"이 새끼가 진짜 너 오늘 나랑 맞짱한번뜨자 지는쪽이 봉천밖으로 사라지는거다."

"좋디."

신마적이 권총을 풀르고 다리에 단검을 뺴고 앞으로 나왔다. 시라소니 역시 타도계(자루달린 긴칼)을 몸에서 풀르더니 앞으로 나왔다.

 

다시 이xx의 말을 인용해보자

"불안했지 아무리 형님이 씨름을 할줄 알고 힘이 장사지만 저쪽은 싸움꾼이거든꾼 프로야. 손으로 권총을 가리고선 총구는 저쪽(시라소니)을 향해서 겨눴지 혹시모르니까 말이야. 그떄 동욱이 형이 그래 [잘지내자는 놈이 형님 뻘한테 그렇게 반말 하면되나] 그러니까 저쪽에서도 [아 그부분에 대해선 내가 잘못했소]라고 말하니까 금새 분위기가 풀렸지 그리고 오더니 먼저 학기형님이나 동생들한테 사과를 해요. 그래 우리쪽에서도 사과를했지 그 다음엔 뭐있나 다같이 주점으로 가서 날새도록 마셨지. 사실 그때 동욱이형이 생각을 잘한거야 둘이 싸웠으면 동욱이형도 당했어......"

 

바짝 긴장해있던 봉천두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신마적과 시라소니의 잡고는 봉천에서 제일 큰 술집으로 들어가 마음껏 먹고 마셨다.

시라소니 사건이 있고 신마적일행이 봉천에서 생활을 계속하던중 1945년 조선이 해방을 맞았다.

봉천 역시 축제 분위기였다. 봉천사람들은 일본군 숙소에 들어가 일본군들을 살해하고 재물을 약탈하였고 건달들은 다시 그 재물을 빼았는등 갑작스러운 해방에 치한은 엉망이 되었고 무법천지가 되었다.

"형님 조선으로 돌아갑시다 까짓거 종로통이 아니더라도 우리 살곳 없겠수?" 해학기가 신마적에게 말하였다.

신마적도 그때즈음해서는 조선을 몹시도 그리워하고 있는것 같았다.

많은 부하들이 가족을 만나러 고국으로 돌아갔다. 요시찰에 걸려 조선땅에 못들어가던 사마귀나 들소도 "만세"를 부르며 조선으로 돌아갔다.

 

신마적일행과 봉천두 역시 혼란중에 만주일본군 장교의 집들을 털며 큰건을 단단이 잡았다.

그리고 중국인 오야붕이나 기타 타 주먹들도 두들겨 재물을 약탈했다. 어느정도 돈이 모이자 신마적 일행은 조선으로 떠날 준비를 하였다.

정호 역시 주점을 내놓고 조선으로 돌아갔으며 처음에 봉천에 함꼐왔던 학생패 중에서도 3명은 작별을 고하고 다시 종로로 돌아갔다.

신마적은 고향인 평양으로 가고자했다. 해학기,이xx,임도식등 처음에 같이왔던 3명 역시 신마적을 따라 평양으로 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 봉천에서 따르던 부하 20여명도 동행을 결심한다.

조선에 돌아가도 딱히 갈곳이 없던 봉천두는 당분간은 봉천에 남기로했다.

 

봉천두에게 작별을 고하고 일행은 다시 평양으로 돌아왔다.

평양은 어렸을때 신마적이 살았을때와는 많이 변해있었다. 막 광복을 맞은 후 이곳역시 치안이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어께에 흰색 완장을 찬 청년들이 임시로 치한유지를 하고있었지만 그들도 뒤로는 돈과 폐물을 빼돌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들은 총과 칼로 무장한체 건달로 보이는 사내들을 보면 닥치는대로 끌고가 두들겨 팼다.

눈이 퍼런 소련군 일부와 일본군 복장을한 조선인 방범대 군인들도 토지와 재물을 약탈해 가는등 그야말로 무법천지였다.'

총칼로 위협하는 군인들과 방범대 앞에서 주먹들이 할 수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수많은 주민들이 인민재판이라는 이름속에 죽어갔고 소련군과 공산정권을 찬양하지 않으면 모두 반동분자로 몰려 죽음을 당했다.

이러한 사회체제는 주먹들이 살아갈 수가 없었다. 주먹들은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갔다.

거리에는 날마다 민주주의다 공산주의다 해서 젊은 청년들이 서로 치고받았으며 반동분자로 몰려 죽음을 당한 사람이 하루에 트럭으로 수백대씩 나왔다.

 

"형님 여기있다가는 저희도 죽겠습니다 우리도 남쪽으로 갑시다 차라리 목포로 갑시다 거기 아는 동생들이 좀 있어요. 거기서 배값 벌어오는 놈들이랑 같이 일하면 설마 우리입에 거미줄이야 치겠습니까?"

해학기의 설명에도 신마적은 가지 않았다. "이제 돌아다니는것도 지쳤다. 죽어도 한곳에서 죽으련다."

많은 동생들이 남쪽으로 떠났다. 임도식도 신마적과 작별을 고하고 경성으로 떠났다.

부하들도 거리를 지나가다 소련군에게 걸려 죽도록 얻어맞고 돈도 다 뺏긴 후였다.

 

"형님 갑시다 여기있다간 우리 다 굶어죽던지 맞아죽던지 하납니다. 우선은 살고봐야지요 소문에 쫌 있으면 여기랑 남쪽이랑 갈라져 가고싶어도 못간답니다. 빨리갑시다."

이xx와 해학기는 하루에도 수십차례 신마적을 설득했다. 그래도 신마적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 적은 나이도 아니고 어딜가면 뭐하나 그냥 여기서 살런다."

 

기어이 일이 터지고 말았다. 해학기와 동생3명이서 끼니거리를 찾다 돌아오던 도중에 술취한 소련군 장교 2명과 시비가 붙은 것이다.

소련군인에게 감정이 폭발한 해학기와 부하들은 소련군 장교2명을 집단으로 린치했고 와중에 한명은 사망하고 말았다.

소식을 듣고 소련군이 우루루 몰려들었고 그들은 총으로 해학기등 4명을 즉결 사살하고말았다.

그들의 오야지가 신마적임을 파악한 공산당원들은 신마적 일행이 거처하고있는 객점을 기습해 모두 체포해버렸다.

재판장으로 끌려가자 해학기등 4명의 시신이 있었다. 신마적과 이xx를 포암한 5명은 공산당원들에게 집단구타를 당했다.

"같은 조선인끼리 이거 너무하는거 아니요?" 신마적의 말에도 그들은 아랑곳하지않고 폭력을 행사했다.

"이런 반동놈에 새끼들 감히 소련동지들을 죽여? 이거 악질중에 악질이구만 기래 님자들 소련군에 넘기라는 지시만 안받았어도 내레 당장 죽여버렸어."

다행히도 신마적을 알던 몇몇의 고향사람들이 도움을 요청하고 해학기일행과는 관련이 없다는 지장을 찍고 공산당원 서약서를 쓰고나서야 인민수용소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부하2명은 심한폭력으로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

객점으로 돌아온 신마적 일행은 공상당원2명으로부터 위험인물로 분리되며 감시를 받았다.

"거봐요 우리가 가잘때 갔으면 이런꼴은 안당해도 됐는데 이게 뭡니까? 죽어서 해학기형에게 뭐라고 하실건데요." 이xx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울분을 토하며 신마적에게 대들었다. 신마적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이xx의 이야기이다.

그러다가 이제는 분단이 되어버린거야 이제는 못가는거지 남쪽으로는 그때는 동욱이형 원망을 많이 했지. 돈도 다뺏기고 먹을것도 다뻇기고 이거는 감시를 붙여놔서 어디 마음대로 나다니지도 못하고 주는 밥이라야 일주일에 4일은 물에 깻잎몇장 얹인게 다였어. 그나마 칡이랑 옥수수라도 주는날에는 고마운거지.

그렇게 살다가 이제 전쟁이 떡 난거지. 방송에서는 뭐 이제 해방이됐다 어쩌네 난리가 났고 그때 아차 싶더라고 이레되면 남쪽으로가도 소용이없어지잖아. 그러다가 이제 겨울로 접어들떄가 되니까 빨갱이들이 우리사는데로 오더니 [이제 너네는 감시안받아도 된다 따라와라]그러더라고 그래서 [안받으면 안받는거지 따라가기는 어디를 갑니까?]그랬더니 이제 우리보고 전쟁에 나가 싸우라는거예요.  그래서 [아니 우리가 이겼다 그러던데 어디를 나가 싸웁니까]그러니까 [미제 앞잡이놈들이 양놈들을 끌어들여서 발악을 하니까 군인이 많이 필요하다]그러는거야 생각해보니까 끌려가면 죽을것같거든 우리데리러온놈이 2명밖에 안됐는데 총도 안갖고있었어 기다란 창마냥 그런거만 하나씩 들고있었지. 뒤에서 목을 콱졸라 죽여버리고 나머지한놈은 동생들이 죽여버렸지. 그리고나선 [동욱이형 지금 가야됩니다 남쪽으로 갑시다 우선은 살고봅시다] 그래도 동욱이형은 안갈라그래 고향에서 살겠다고 죽어도 고향에서 죽겠다는거지. 그래서 [동욱이형 그럼 나는 남쪽으로 가겠습니다 나중에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꼭 형보러 다시 올꺼니까 건강하게 잘계세요] 그리고 동생 2명을 데리고 나왔지 생각해보면 그때 그렇게 동욱이형을 두고 오는게 아니었어 같이 있었어야됐는데......남쪽으로 내려오면서 고생은 말도못했지.........."

 

이xx는 평양관에서 만난 부인과 가족 그리고 동생들과 함꼐 남쪽으로 떠났다. 이미 국군이 3.8선을 돌파해 평양에 다다를 무렵이었다. 남쪽으로 월남해 영등포에 자리를 잡은 이씨는 옛 지인의 도움으로 종잣돈을 얻어 영등포 시장에서 조그마한 한복집을 운영하였다가 1.4후퇴때 다시 대전으로 피난한 후 올라왔다. 다시 경성으로 올라온 이씨는 영등포에 터를잡고 '폭력주식회사'로 불리는 '건중친목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미군군수물자를 처분하는 일을 맡기도했다.

휴전이 되면서 남북은 다시 갈라지게 되었고 이씨는 마음속에 언제나 엄동욱에 대한 그리움을 안은체 살아가게된다.

 

"젊은시절의 20년을 동욱이형과 같이보냈어 아직까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그것도 몰라 그거라도 알면 속이라도 후련하겠건만......."

자신의 영원한 형님이자 오야붕인 엄동욱을 생각하면서 이씨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엄동욱은 1961년 평양에서 병사했다는 소문이 돌긴했지만 아직도 생사를 아는사람은 아무도없었다.

"그때 데리고 왔어야 했어. 같이 왔었어야됐어 두들겨패서 업고라도 왔었어야됐어 그게 참 너무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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