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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 궁시렁 궁시렁

신마적 엄동욱 한 시대를 풍미했던 남자 [야인시대]

by 멀리던 2020.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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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괴력의 신마적)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에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니...."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최철호군이 열연한 신마적 엄동욱이 술에 취해 거리를 휘저으며 고래고래 소리높여 부르던 노래다.

어쩌면 그 누구보다도 신마적에게는 조국을 잃은 슬픔은 컸을것이다. 당시에는 아주 획기적으로 가방끈 긴 엘리트에 일본 유학마저 마치고 당당하게 귀국했지만 돌아온 조국에서 조선인인 엄동욱을 받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휘문고보다 보성전문이다 말들이 많지만 당시 신마적이 "나 보성전문 출신이야"라고 말하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봐서는 보성전문 출신이 맞을 것이다.

당시 대학교는 물론이고 초,중,고등학교역시 나이에 맞지않은 학생들이 대다수였다.

보통학교,중학교등이 나누어져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단지 이름뿐이었고 대다수는 어린나이에 조기입학하거나 20대 중,후반의 학생도 수두룩하였다.

1909년생인 엄동욱이 다시 조선땅을 밟은것은 22살때인 1930년이었다.

 

"참으로 부끄러운 짓을 많이 하고 다녔어. 내가 죄가 많아 그때 내가 친(때린)사람들에게 지금이라도 용서를 빌고 싶건만..."

신마적의 YMCA패거리중 막내였던 이XX(2002년 87세로 타계)분이 생전에 한 말이다.

그분을 비롯하여 2002년에 만난 엄동욱과 함께 했던 이제는 몇 안되는 사람들의 말을 빌려 약소하게 나마 엄동욱의 삶을 파헤쳐 보고자 한다.

 

22살 부산항으로 입국하여 고향인 평양으로 가지않고 생계를 위해 다짜고짜 종로 한복판으로 상경했지만 종로라고 딱히 엘리트대우를 받을만한 일자리가 있던것도 아니었다.

일본에서의 유학생활당시 조선인이라는 멸시를 받던 엄동욱이었지만 워낙에 강인한 성격에 독종이었던 엄동욱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고한다.

일본학생들을 비롯해 일본까다(야쿠자)등과 툭하면 시비가 붙고 싸우기 일수였다. 아마도180이 넘는 건장한 체격의 젊은 엄동욱을 안그래도 적개심많은 일본 입장에서 단순 유학생으로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히나 드라마에도 나오지만 동경유학시절 야쿠자들과 싸우다 배에 칼을맞아 창자가 흘러나오는 상황에서 창자를 잡고 태연히 병원으로 갔다는 이야기는 진실이든 거짓이든 독종이라는 그의 이미지를 심어주기에는 확실한 말로서 조선의 학생들에게는 전설처럼 퍼져나가게 된다.

 

할일없이 돌아다니던 엄동욱이 찾은곳이 엄동욱의 상징이 되어버린 YMCA였다.

엄동욱의 오른팔인 유도와 권투부출신의 강펀치 해학기를 만난것도 바로이때부터였다.

YMCA에는 젊은 운동부들과 한주먹씩 하는 학생 대가리들이 많았다. 고등학생을 비롯하여 연희전문,보성전문등 엘리트들도 많았다.

YMCA파 란 말이 있듯이 소속이 아니거나 일본인이면 이곳에 들어오기가 힘들었다.

아무생각없이 '운동이나하러갈까?'라고 생각하며 들어간 신마적을 가만 놔둘리가 없었다. 당시 학생패의 오야지는 21살의 해학기였다. 손으로 사람머리를 잡고 들어올리릴만큼 손이컸고 어깨가 거의 180도를 이루는 천하무적의 운동선수겸 싸움꾼이었다고 한다.

엄동욱이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학생패들이 병풍을 쳤고 엄동욱은 까부는 몇놈을 들어다가 바닥에 내리꽃아버렸다.

15살의 YMCA막내였던 소식통 검둥이와 청소,빨래담당 이XX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검둥이가 재빨리 뛰어가더니 해학기를 불러왔다. 해학기가 싸움판이 벌어지는 곳으로 올때쯤에 신마적은 한성권보(중퇴)출신 싸움꾼 갈치(이민규)를 아예 대자로 눕혀버린 후였다.

 

"너 어디서 글러먹던 개뼉다구 같은 새끼야?"

당시 YMCA에서의 해학기의 존재는 절대적이었다. 종로주먹패들도 박살낸 전적이있어 아무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존재였다.

한번은 조선극장에서 공짜 관람을 하던 학생들과 기도들간에 시비가 붙은 상황에서 주먹한방에 기도가 대자로 뻗어 백병원으로 실려가 이틀만에 깨어난 사건이 있었다. 그후부터 사람들은 살인펀치라 불렀다고 한다.

학생패들은 당연히 해학기 아래로 대자로 뻗어있는 엄동욱을 예상했다. 그렇지만 엄동욱과 해학기는 치열하게 치고받았다.

문제는 해학기의 주먹이 엄동욱을 정통으로 맞히지 못한다는것이었다. 엄동욱은 괴력을 발휘하며 해학기의 허리춤을 잡고 이리던졌다 저리던졌다하고 있었다.

붙어있는 상황에서 체중이 실리지않은 해학기의 주먹은 엄동욱에게 큰 데미지를 주지 못하였음은 당연하다.

당시 둘은 정말 치열하게 치고받았다고한다. 먼저지친쪽은 해학기였다. 엄동욱이 지친 해학기를 다시 내다꽃아버리고 솥뚜껑만한 주먹으로 일어나는 해학기의 얼굴을 정통으로 내려치자 해학기는 조용히 잠들어 일어나지 못했다.

 

이 사건으로 YMCA는 한순간에 뒤집어지고 말았다. 형님들의 눈치에 검둥이와 이XX는 해학기를 업고 백병원으로 달렸다.

엄동욱은 유유히 들어와 운동도하고 밥도먹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얼마간의 용돈도 주었다고한다.

그 후로 엄동욱에 대한 소문은 순식간에 종로바닥에 짜하게 퍼지게된다. 점점 엄동욱 밑으로는 학생들이 모여들게 되었고 퇴원한 해학기와 갈치도 엄동욱에게 머리를 숙이게된다.

독종에 한번 화나면 소처럼 날뛰었지만 정이많고 자신보다 연장자에게 깎듯하고 약자에게 약하고 특히나 조선의 학생들을 잘 챙겨주고 그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해주어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엄동욱을 우상으로 여기며 따르게 되었다.

 

경성제국대학 일본인 유도부학생들과 국밥집에서 시비가 붙은 사건은 아주 유명했다고한다.

국밥집에서 밥을 먹던 YMCA학생패와 일본인 유도부간에 시비가 붙었고 경성제국대학교 일본인들은 모두 도망가버렸다.

크게당한 일본인들은 보복으로 레몬다방 골목에서 후이구찌(기습)으로 학생패들에게 몽둥이 찜질을 하였다.

원체 일본인들을 싫어하던 엄동욱은 경성제국대학운동부연습실에 혈혈단신으로 들어가 운동부들을 모두 내리꽃아버렸다.

 

이어 명동에서의 일본인 어꺠 구타사건등 수많은 사고를 일으켰지만 무고한 시민이나 약자들을 향해서는 절대 시비를 걸지 않았다고한다.

혹여 학생패들이 상인들이나 조선인 주먹들에게 거드름을 피면 엄동욱이 징계했다고 한다.

 

글이 너무 길어지는데..^^

좀 짧게할꼐요!!!!

 

사람들이 이래저래 말이 많은 구마적과의 관계.

사실 종로바닥에서 고희경(구마적)이 뮤명한것은 사실이었다고한다. 당시 우미관과 조선극장을 갖고있던 구마적은 사람들에게 마적으로 불렸다고한다.

당시 사람들도 고희경이란 이름은 잘 기억하지 못하였다. 당시 마적이란 극장기도 오야붕이 있었고 사람들이 더 어리고 주먹도 쎈 엄동욱이 나타나자 새로운 마적이라 해서 신마적으로 불렀다고 한다.

1934년 구마적이 김두한에게 패했고 김두한이 조직을 정예화,거대화 시켜가며 커가는 과정이되면서 엄동욱과의 싸움은 어찌보면 불가피한 것일지도 몰랐다.

 

1936년 엔젤술집의 현장으로 가보자.

그때의 일을 목격한 이XX를 비롯하여 2002년까지는 아마도 당시의 학생패나 주먹패중에 당시 상황을 목격한 사람들이 많이 남아있었을 것이다.

빨래담당에서 꼬봉으로 상승?한 이XX와 엄동욱을 비롯한 학생패들이 먼저 엔젤 술집에서 자리를 잡고있었다.

당시 엄동욱은 김두한의 존재에 대해 상당히 예민해 있었다고한다. 나이많은 주먹들이 자신에게 고개를 숙였던 입장에서 나이어린 주먹이 자신을 치고 올라오는 입장이 되자 신경이쓰였던것이다.

 

"주위의 선배들이 동욱이형님에게 [김두한이라고해봤자 아직19살밖에 안되는 어린애 아닙니까 성격이좀 까탈스럽긴해도 아직 날뛸정도는 아닙니다 너무신경쓰지마세요] 라고 이야기를해도 [종로바닥에 주먹좀쓴다는 어깨들과 야쿠자들이 두한이에게 다 박살나고있어 어린놈이 너무 예의가 없고 기어오르는것같에 언제한번 좀 혼내줘야겠어]라고 말하고다녔지"

 

이XX를 비롯한 학생패들에게 이런이야기를 한지 얼마 지나지않아 열차다방 앞에서 건달2명과 시비가 붙어 2명을 보기좋게 거꾸로 땅바닥에 박아버린 일이있었다.

이유인즉슨 어깨들이 엄동욱을 대하는 태도가 예전에 비해 훨씬 불량해졌다는것이 이유였다.

여하튼 이런일촉즉발의 상황은 엔젤 술집에서 드디어 터지고야 말았다.

술집에 들어온 종로건달들은 어찌된일인지 자리로 가지않고 학생패 주위에 병풍을 쳤다.

[형님 저희애들을좀 치셨다면서요 제가 나이는 어리지만 오늘 형님을 좀 때려야겠습니다]

[너 이런 개xx]

신마적이 탁상을 뒤집고 의자를 발로차며 난장판을 만들었다.

[형님 애들은 다 내보내고 잠들면 병원으로 업고갈놈만 하나씩 안에 남깁시다. 그리고 한판붙읍시다]

 

김두한측에서 김두한과 꼬봉한명이 남고 엄동욱 측에선 엄동욱과 이xx만 남았다.

주먹쎈놈들은 오야지가 당하면 바로 달려들어 난장판이 될게 틀립없다. 그래서 양쪽에서는 경험없고 어린 두명만을 남겨두고 모두 밖으로나가 대기했다.

이XX의 말이다

"그땐 그랬단 말이야 동욱이형이 맨날 그 꼼보자식,꼼보자식그랬는데 막상 앞에 턱 서니까 이게무슨 산이하나 있는것같에.

눈매나 몸을 딱 보니까 '아 이거 동욱이 형님이 안되겠구나 이거오늘 뭔일 나겠구나'이런 생각이 딱 들더라고 사실 동욱이형이 항상이 허벅지쪽에 단도를 갖고다녔어 양쪽발에 두자루씩 네자루를, 근데 싸우기전에 그쪽에서 그러더라고 [형님 조선인끼리 싸우는데 단도는뺴고 주먹으로 합시다] 다른사람같으면 들은체도 안해 근데 동욱이형은 바로 단도를 빼서 나한테 주더라고 그래서 싸움이 시작됐는데 학기형님때처럼 오래싸우지도않았어 (엄동욱이)허리를 잡으려고 들어가니까 그쪽에서 붕뜨더니 발로 얼굴을 팍 내질러버렸지 뭐 정신을 차리기전에 가슴팍하고 얼굴을 몇대 더 가격당하고는 그대로 누워서 못일어났지"

이것이 당시 김두한과 엄동욱싸움의 결말이다. 그후 엄동욱은 조선에서 떠나게 되는데 

 

 

 

 

 

자 2부로 넘어 가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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