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 역시 김두한 미화다 비하다 말이 많을수도 있겠지만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중립적으로 평가해보고자 한다.
포스팅들의 목적은 야인시대나 장군의 아들같은 야사가 아니고 유지광,김두한,신상현 자서전과 같은 속칭 빠의 글이 아닌 최대한 사실에 가까운 정사를 표방하고싶기때문이다. 또한 그에 따른 나름대로의 분석 및 평가를 더해보고 싶은게 그 취지라 말할수 있을것같다.
단도직입적으로 우선 속칭 김두한의 일기토 기록부터 살펴보도록하자. 패싸움이나 다수의 싸움이 아닌 그야말로 내가 알고있는 밝혀진 일기토만 서술하겠다.
34년 vs 박철수(망치) 데미지0 약11회 타격 [KO]
34or35년 vs 마적 데미지0 약3~4회 타격 [KO]
35년 vs 임대업(뭉치로 예상) 데미지0 약3회 타격 [KO]
35년 vs 벽돌(신원미정) 데미지0 약5~6회 타격 [KO]
35년 vs 정춘식 데미지0 약7~8회 타격 [KO]
35년 vs 백만호(빽공)(꽁) 데미지0 약5~6회 타격 [KO]
36년 vs 이지마(이이지마) 데미지 약3~4회 타격 약10~11회 [KO]
36년 vs 엄동욱(신마적) 데미지0 타격 약 4~5회 [KO]
42년 vs 민수(휘발유 *고경주와는 다른 휘발유) 데미지 약2회 타격 약3회 [기권]
45년 vs 이시이(조선이름 오종수 일본인) 데미지 약10~15회 타격 약2~3회 [TKO]
일단 김두한 어린시절은 제외하고 속칭 주먹패에 가입한 이후부터 50년대 이전까지의 내가아는 경력이다. 중간에 혹 빠진게 있을수도 있겠고 모르는 다른 경력도 있을수가 있겠지만 나름대로 최대한 고증을 해보았다.
무려 전적이 10전10승 9KO다. 36년 19세까지로 좁히면 8전8승 8KO다. 게다가 속전속결로 끝냈다
박철수와 이지마가 많은 타격을 받았던 이유는 들어매치기(요즘용어로 테이크다운) 이후로 밑에깔려 팔이 묶인체 계속해서 안면에 머리박기를 당했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부터 고증을 한번 들어가보도록하겠다.
우선 김두한의 어린시절은 어땠을까? 증언에 따르면 약10~11세부터 쌈박질을 시작하였다고한다. 중간에 진짜 무슨 만주를 갔다왔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들리는 이야기로는 그랬다는 카더라가 있긴하다.
약 13세이후부터 실제 원노인집에서 얹혀살았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운동을 열심히 하였던건 맞는것같다. 김두한 혼자의 헛소리가 아니라 살아생전 정진룡의 이야기도 일치하였으니 말이다.
둘이 같이 입을 맞춘 구라라면 할말은 없겠지만 이건 배제하자.
돌로 아령같은걸 만들어 헬스 비슷한 운동을 했고 뛰어서 산을 오르락 내리락하는걸 즐겼다고한다.
우리가 또 몰랐던 사실은 김두한 싸움의 원천은 복싱에 있었다는 점이다. 13~14세에 종로바닥을 어슬렁 거리면서 우연치 않게 체육관을 구경하게 되었고 거기서 후일 김두한이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하는 몇살 아래터울 정복수를 만난게 복싱을 익히게된 계기가 되었다.
복싱을 두 눈으로 본 김두한은 완전히 매료되어버렸고 체육관을 다닐 입장이 아니었던 김두한은 운동이 끝나는 시간 정복수에게 개인 레슨을 받곤했다.
또한 자루에 솔이나 모래를 담아 마당에 걸어놓고 복싱연습,킥연습을 하였고 정진룡과 같이 파트너가 되어 상대방 떄려눕히는 기술들을 연습했다고 전해진다. (어린시절 정진룡과 5번싸워 3번을 김두한이 이기고 2번을 정진룡이 이겼다고하던 술자리 우스갯소리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건 디테일한 이야기가 없어 패스)
이 둘이 하루 웬종일 싸움연습하다 익힌 기술이 들어매치기 이후 머리박기 공격이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상대방 허벅지를 붙잡고 들어올려 바닥에 꽃은후 자기가 상위 포지션이 되어 상대방 팔을 묶고 머리로 안면을 연타로 박아버리는 테이크다운의 응용기술을 이미 저때 저 둘은 써먹었다고 볼 수있겠다.
실지로 알려진바와같이 김두한은 이 테이크다운 기술로 박철수와 꽤나 고전했던 이지마를 잡았고 이 기술은 정진룡도 싸울때 꽤나 많이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지금같으면 한창 공부하거나 칭구들이랑 놀 초등학교,중학교시기에 맨날 쌈질연습만 하고 돌아다녔으니 이미15~16세에 또래중에선 이 둘을 당할 애들이 없었다.
좋은 피지컬에 타고난 힘과 펀치력이 있었고 복싱기술,발기술도 좋았던 김두한에게 도저히 일반인들은 사실 상대가 될 수가 없었다.
"어깨 탁 집고 발로 탁탁 갈기면서 싸우는데 나도 탄복할 정도야" - 김동회 회상
"그 당시 진짜 잇뽕이었지 한대 맞으면 그냥 가니까" -이상욱(종로꼬마) 회상
"눈이 좋았어 참 주먹을 잘피했어" -고xx 회상
그리고 당시 김두한의 또 한가지 특징은 속칭 지금으로 말하면 위빙이 상당히 좋았다는점이다.
복싱 기술을 싸움에 십분 활용했다고 밖에 볼 수 없는것이다. 워낙에 위빙이 좋아 상대 주먹들을 흘리면서 단박에 파고들어 카운터 훅이나 스트레이트를 꽃아버리는 방식이 주 기술이었던걸로 알려진다
자 여기까지가 대략 알려진 김두한의 싸움의 기술이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점이 있다. 위에 전적을 봐도 알겠지만 김두한의 압도적 일기토 전적은 완전히 34~36년 사이에 쏠려있다. 저 시기의 전적은 정말 개사기 캐릭이라 불릴정도로 압도적이다.
저 당시 겁없는 폭주 기관차의 김두한을 시라소니가 만났더라면 냉정하게 말해 장담 할수는 없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뒤의 전적2개, 특히 마지막 일화는 세세하게 뜯어보면 꽤나 고전했다고 전해진다.
물론 너무 어린나이에 대장이 되어버린나머지 이후로는 보턴만 누르지 사실 직접 일기토할일이 없어진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김두한은 적어도 해방전까지는 김삼수 김병수와 함께 꾸준히 체육관을 다니며 몸을 단련시켜온것으로 전해진다
대장된 이후로 무조건 술만프고 여자만나고 다니면서 만신창이의 비만 몸땡이로 내버려둔게 아니라 적어도 자기 몸관리는 확실하게 해왔다는 이야기이다.
반도의용청년단 시절 사진이 이를 확실히 뒷받침해주고있다.
그런데 문제는 일단 일대일 싸움의 감이 너무 떨어져버렸다는점이다. 사실 김두한이 이지마와의 대결에서 살짝 약점이 노출되기도 하였는데 그 이전까지 김두한은 힘으로 밀고들어오는 인파이터식의 상대들과 싸워 더 압도적인 힘과 기술로 이들을 뚜까패버렸다.
하지만 가라대 기술을 쓰며 빙빙도는 속칭 빠른 스피드의 아웃복싱쟁이들에게는 꽤나 난감한 싸움을했다. 이지마와의 대결에선 그래도 최전성기의 체력이 받쳐줬고 감도 살아있었기에 결국에는 얼마못가 이지마를 잡아 개패듯이 팰수 있었지만 40년대, 특히 4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떨어진 감과, 몸은 유지됐지만 떨어진 체력으로 인해 일계 유통업 사장인 이시이에게 하마터면 잡혀버릴뻔할 정도로 난조를 보인다.
물론 추후 기회가 되면 포스팅을 해보겠지만 이시이가 완전 허접은 아니었다손 치더라도 초반의 압도적인 전적과 비교해본다면 꽤나 피지컬이 떨어져있었다고 밖에 볼 수 없을것이다.
하지만 장기전에 체력도 떨어진 상태에서 비록 상대가 강펀치는 아니지만 저 정도 타격을 허용하고도 싸웠다는것은 맷집 하나는 굉장했다는 것을 반증해준다
사실 김두한이 10대~20대초반까지가 정통주먹쟁이였지 너무 이른 나이에 대장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반도의용청년단 시절즈음해서는 감찰부를 맡으면서 마구잽이식으로 밀어붙이는 인생보다는 조금씩 정치공학적으로 살아가는 태세를 취하기 시작했다고 보는게 맞을것이다.
그것이 조직의 리더라 그리 되었을수도있고 세상물정을 빨리익혀 그랬을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그 이후로도 대한민청,국회의원등을 하며 다른 계통의 고위직과 접할 기회가 수시로 있었기에 정통주먹쟁이 보다는 판을 좀 크게보는 공학적인 삶을 살았다고 보는게 맞을것이다.
일전의 시라소니와의 일화도 아마 이러한 시각으로 볼 수 있기에 아직까지도 끊이지 않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 본심은 당사자 둘만 알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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