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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85시즌] 조던 드디어 NBA에 입문하다!
마이클 조던은 84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1라운드 3순위로 시카고 불스의 유니폼을 입게 됐다. 1순위를 가지고 있던 휴스턴 로켓츠는 하킴 올라주원을 지명했으며 2순위 지명권은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가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조던 대신 캔터키대학 출신의 센터 샘 보위를 지명했다. 결과론이지만 당시 신인드래프트는 아직도 가장 멍청한 실수라고 회자된다.
당시 블레이저스의 감독이자 현 ESPN의 컬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잭 램지는 그때의 상황에 대해 '물론 조던이 훌륭한 선수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우리가 지명한 보위는 조던이 가지고 있지 못한 신장(216cm)을 지녔고 우리팀에 꼭 필요한 센터였다'고 말했다.
혹자는 블레이저스가 83년 드래프트에서 이미 클라이드 드렉슬러라는 유명한 가드를 지명했기 때문에 굳이 조던을 지명할 이유가 없었다고 하지만 프로입단 이후 보위와 조던의 행로는 그야말로 극과극이었다. 결국 조던은 시카고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84-85시즌 프로에 모습을 드러냈다.
조던이 합류했던 당시의 불스는 그야말로 하위팀의 전형이었다. 불스는 83-84시즌 27승 55패로 NBA 전체 23개팀중 20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조던이 들어오자 팀은 상승세를 탔고 84-85시즌을 38승 44패로 마감하면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루키시즌 조던은 82경기에 모두 출장해 평균 28.2득점, 6.5리바운드, 5.9어시스트, 2.4가로채기라는 올라운드한 스텟을 남기며 올해의 신인에 선정되는 영광을 차지했다.
당시 조던은 신인이면서도 불스의 공격과 수비를 모두 이끌었다. 이 때문에 베테랑 선수들과 마찰이 있기도 했다. 이를 보여준 단적인 예가 올스타전. 루키로 유일하게 올스타전에 참가했던 조던은 22분간 뛰며 단 7점에 그치는 부진을 보였다. 올스타전 후 일부에서는 일부러 조던에게 패스를 하지 않았다는 음모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한편 조던은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와의 경기에서 49득점을 올리며 그해 신인 선수들 중 최다득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플레이오프에선 밀워키 벅스를 맞아 시리즈 평균 29.3득점을 올리며 분전했지만 팀은 아쉽게도 1회전에서 탈락했다.
[85-86시즌] 가장 불행했던 시즌
2년차 시즌을 맞이한 조던이나 불스는 좀더 나은 성적을 기대했다. 하지만 조던 개인에게는 가장 불행했던 시즌이었다. 운동선수라면 누구도 피해가기 어려운 부상이 문제였다. 시즌 개막후 3경기만에 왼쪽 발이 부러져 전력에서 이탈한 조던은 정규시즌에서 18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했고 평균득점도 그의 경력중에서 가장 낮은 22.7득점을 기록했다. 불스측에서도 분위기 쇄신을 위해 유니폼 디자인도 바꾸고 감독까지 알버트 벡에서 케빈 로커리로 교체하며 시즌을 기대했지만 믿었던 조던의 부상으로 헛품만 판 셈이 됐다.
하지만 조던이 빠진 불스는 올랜도 울드리지와 조던 입단 이전 팀 공격을 이끌었던 퀸튼 데일리의 활약과 동부지구 애틀란틱 디비전팀들의 부진에 힘입어 30승 52패라는 부진한 정규시즌 성적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행운을 누리게 된다.
플레이오프 상대는 당시 동부지구 최강이던 보스턴 셀틱스. 물론 불스는 셀틱스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셀틱스를 상대로 불스는 부상에서 돌아온 마이클 조던이 팀을 혼자 이끌며 분투했다. 특히 보스턴의 홈구장에서 열린 2차전은 조던의 이름을 알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2번의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에서 조던은 막강한 셀틱스의 수비를 비웃듯 역대 플레이오프 최다 득점인 63득점을 기록한 것이다.
비록 시리즈는 0승 3패 불스의 스윕으로 끝났지만 조던은 시리즈 평균 43.7득점의 놀라운 기록으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면서 다음 시즌을 대비하기 시작했다.
마이클 조던은 84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1라운드 3순위로 시카고 불스의 유니폼을 입게 됐다. 1순위를 가지고 있던 휴스턴 로켓츠는 하킴 올라주원을 지명했으며 2순위 지명권은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가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조던 대신 캔터키대학 출신의 센터 샘 보위를 지명했다. 결과론이지만 당시 신인드래프트는 아직도 가장 멍청한 실수라고 회자된다.
당시 블레이저스의 감독이자 현 ESPN의 컬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잭 램지는 그때의 상황에 대해 '물론 조던이 훌륭한 선수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우리가 지명한 보위는 조던이 가지고 있지 못한 신장(216cm)을 지녔고 우리팀에 꼭 필요한 센터였다'고 말했다.
혹자는 블레이저스가 83년 드래프트에서 이미 클라이드 드렉슬러라는 유명한 가드를 지명했기 때문에 굳이 조던을 지명할 이유가 없었다고 하지만 프로입단 이후 보위와 조던의 행로는 그야말로 극과극이었다. 결국 조던은 시카고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84-85시즌 프로에 모습을 드러냈다.
조던이 합류했던 당시의 불스는 그야말로 하위팀의 전형이었다. 불스는 83-84시즌 27승 55패로 NBA 전체 23개팀중 20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조던이 들어오자 팀은 상승세를 탔고 84-85시즌을 38승 44패로 마감하면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루키시즌 조던은 82경기에 모두 출장해 평균 28.2득점, 6.5리바운드, 5.9어시스트, 2.4가로채기라는 올라운드한 스텟을 남기며 올해의 신인에 선정되는 영광을 차지했다.
당시 조던은 신인이면서도 불스의 공격과 수비를 모두 이끌었다. 이 때문에 베테랑 선수들과 마찰이 있기도 했다. 이를 보여준 단적인 예가 올스타전. 루키로 유일하게 올스타전에 참가했던 조던은 22분간 뛰며 단 7점에 그치는 부진을 보였다. 올스타전 후 일부에서는 일부러 조던에게 패스를 하지 않았다는 음모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한편 조던은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와의 경기에서 49득점을 올리며 그해 신인 선수들 중 최다득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플레이오프에선 밀워키 벅스를 맞아 시리즈 평균 29.3득점을 올리며 분전했지만 팀은 아쉽게도 1회전에서 탈락했다.
[85-86시즌] 가장 불행했던 시즌
2년차 시즌을 맞이한 조던이나 불스는 좀더 나은 성적을 기대했다. 하지만 조던 개인에게는 가장 불행했던 시즌이었다. 운동선수라면 누구도 피해가기 어려운 부상이 문제였다. 시즌 개막후 3경기만에 왼쪽 발이 부러져 전력에서 이탈한 조던은 정규시즌에서 18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했고 평균득점도 그의 경력중에서 가장 낮은 22.7득점을 기록했다. 불스측에서도 분위기 쇄신을 위해 유니폼 디자인도 바꾸고 감독까지 알버트 벡에서 케빈 로커리로 교체하며 시즌을 기대했지만 믿었던 조던의 부상으로 헛품만 판 셈이 됐다.
하지만 조던이 빠진 불스는 올랜도 울드리지와 조던 입단 이전 팀 공격을 이끌었던 퀸튼 데일리의 활약과 동부지구 애틀란틱 디비전팀들의 부진에 힘입어 30승 52패라는 부진한 정규시즌 성적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행운을 누리게 된다.
플레이오프 상대는 당시 동부지구 최강이던 보스턴 셀틱스. 물론 불스는 셀틱스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셀틱스를 상대로 불스는 부상에서 돌아온 마이클 조던이 팀을 혼자 이끌며 분투했다. 특히 보스턴의 홈구장에서 열린 2차전은 조던의 이름을 알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2번의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에서 조던은 막강한 셀틱스의 수비를 비웃듯 역대 플레이오프 최다 득점인 63득점을 기록한 것이다.
비록 시리즈는 0승 3패 불스의 스윕으로 끝났지만 조던은 시리즈 평균 43.7득점의 놀라운 기록으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면서 다음 시즌을 대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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